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수도 키예프까지 상황이 여의치 않다. 키예프와 남부 오데사 등 주요 도시와 군기지, 공항에 포격과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수백명의 사상자가 생겨났다.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피난민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민 총동원령을 발동하며 반격에 나섰다.

국가의 존망 위기까지 내몰린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게 국가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무기력하게 무너진 것은 1994년 체결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너무 의존한 탓이 크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우크라이나가 당시 가지고 있던 모든 핵무기를 넘기는 대신 러시아와 미국, 영국이 자국 내 영토와 주권을 보장한 합의서다. 하지만 정식 조약이나 협정이 아닌 각서는 국제법적 준수 의무가 약하다. 약육강식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질서에서 얼마든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는 각서만 믿고 자강 노력에 소홀했다. '동맹'이라는 안전보장 수단도 없었다. 정치권과 국민들은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갈려 대립과 분열을 지속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스스로 힘을 키우지 않으면 언제든지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안보와 국익을 침탈당하게 된다는 냉혹한 국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국제사회는 강대국간 진영대결의 장인 신냉전체제에 돌입하게 되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정책에 맞서 옛 소련의 부활을 노리는 푸틴의 정치적 야망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충돌은 쉽게 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사태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북한과 대치하는 우리로서는 안보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이번 사태로 핵 보유에 더욱 매달리게 되면 정부가 추구해온 한반도의 평화구축은 더 멀어질 수 있다.

경제도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위험에 내몰려 있다. 국제 유가는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다. 국제사회의 러시아에 대한 강도높은 제재조치가 장기화되면 금융시장 불안을 넘어 수출과 고용, 성장 등 실물경제까지 악재 쓰나미가 밀려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대외개방형 무역국가로 에너지와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다.

정부는 원자재 수입선 다변화와 유류세 인하조치 등 선제적 대응조치를 해야한다. 반도체산업에 투입되는 네온, 크립톤 등 희소광물 비축 여유분이 있다고는 하나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부품 수출에도 직격탄이 우려되는 만큼 시나리오별로 만반의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한반도에 불어닥친 안보와 경제위기 극복에 여·야 정치권은 물론 민·관 모두 힘을 모을 때다.

그런데도 일부 대선후보들은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활용만 하는 것이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5일 TV토론에서 "무력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하책"이라며 "싸울 필요가 없게 만드는 평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선제타격론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주장에 대해선 "전쟁을 개시하자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윤 후보는 "평화는 상대 도발에 대한 힘과 억지력에서 나온다"며 "상대 비위를 맞추고 굴종한다고 평화가 오지 않는다"고 맞섰다. 또 이 후보 안보관과 종전선언을 겨냥해 "그런 유약한 태도로는 평화가 더 위협받는다"고 일갈했다.

전쟁을 이념과 정쟁의 도구로 활용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는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북한으로선 이라크·리비아에 이어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보면서 핵무력을 더 증강할 가능성이 높다. 평화는 말이 아닌, 강한 군사력과 확고한 한미동맹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대선후보들은 더 이상 냉엄한 국제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 박재성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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