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출격 3할5푼, 교체로는 제로타율 미스터리

   
선발 출장시 리그 정상급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강정호. <사진제공= 뉴시스>

[월요신문 이지현 기자] 미국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활약 중인 강정호가 대단한 선발본능을 보여주고 있다. 당초 미국과 한국 언론에서는 올 시즌 강정호의 팀내 포지션에 대해 내야 대체선수로 뛰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미국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강팀으로 분류된 피츠버그 내야진에 강정호말고도 이미 좋은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고 한달여가 지난 현재 강정호는 교체가 아닌 선발로서 본인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시각으로 7일 오전 강정호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 위치한 PNC 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경기에 6번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이날 강정호는 첫 타석에서 상대 투수 슬라이더를 받아쳤는데 공은 3루 방면으로 애매하게 굴러갔다. 상대 수비수가 공을 처리하기 위해 급히 달려왔으나 제대로 포구하지 못했고 강정호는 상대 실책이 아닌 내야안타로 1루에 출루했다.

5회 선두타자로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강정호는 이번에도 평범한 땅볼타구를 쳤는데 상대 유격수의 송구실책이 이어지며 누상에 살아나갔다.

세 번째 타석에서는 7회 선두타자로 나와 투수가 던진 변화구를 받아쳤으나 이는 3루 파울뜬공이 됐다.

9회말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강정호는 100마일(160km)대 강속구를 던지는 상대 마무리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을 상대로 6구까지 가는 승부를 펼치다 2루타를 만들어냈다. 강정호가 안타를 만든 공 역시 100마일 패스트볼이었다.

강정호의 시즌 네 번째 멀티히트 경기로 시즌 성적 또한 타율 2할8푼9리에 출루율 3할4푼9리 장타율 4할4푼7리로 상승했다. 이날 경기서 장타 및 멀티히트를 기록한 피츠버그 타자는 강정호밖에 없었다.

강속구 완전 적응

강정호가 미국 무대에 진출하기로 결정한 직후 국내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변화구보다 직구 대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 바 있다.

KBO리그서 강정호가 접한 강속구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속구들이 즐비 변화구 공략은 몰라도 속구 대처는 어려울 수 있다는 예상이었다.

실제 LA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의 경우 국내에서 활약하던 당시 최고 구속 150km까지 나오는 속구에 대해서도 대단히 좋은 평을 들었으나 미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는 인정받고 있으나 평균 구속 155km 이상을 상회하는 선발투수들이 득실거리고 이들 투수들이 속구 구위가 하나같이 괴물급이기 때문이다.

반면 강정호가 최근까지 기록한 안타 내용을 살펴보면 속구 대처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신시내티 전까지 총 11개의 안타를 강정호가 만들어냈는데 그 중 패스트볼 즉 속구가 6개에 이르고 5개는 93마일(149.6km) 이상의 강속구였기 때문이다.

또한 강정호가 현재까지 기록한 4개의 장타 중 홈런을 제외한 2루타 3개 모두는 속구를 때려낸 것이다. 힘이 좋은 미국 선수들과 맞상대하며 나름 속구 적응에 있어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선발로 가치 상승

강정호의 올시즌 기록 관련 강속구 적응보다 더 눈에 띄는 부분은 선발 출장시 성적이다.

시즌 초 강정호는 높은 이적료에도 불구 선발보다 주로 교체 출장을 해야 했다. 조디 머서 등 기준 내야수들의 입지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3경기에서 강정호는 3루수와 유격수를 두루 맞으며 선발 중이다. 주전 내야수들의 타격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선발 출장시 강정호가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탓이다.

일각에서는 그런 강정호를 두고 ‘선못보(선발밖에 못하는 바보)’라는 귀여운 애칭으로도 부르고 있다.

실제 강정호는 올시즌 출장한 17경기 중 9경기를 선발로 8경기에서는 대타 내지 대수비로 나선는데 그 성적이 천양지차다.

선발 출장경기서 타율 3할5푼5리에 출루율 4할 장타율 역시 5할4푼8리를 기록한 반면 교체로 나선 경기에서는 7타수 무안타에 출루율만 1할2푼5리를 보이고 있는 것. 선발로 나선 경기만 따로 떼어내 보면 리그 어느 타자와 견줘도 손색 없는 성적이다.

이처럼 강정호가 선발 출장 경기에서만 유독 좋은 활약을 보이자 피츠버그 허들 감독의 머리 속도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앞서 언급했듯 올시즌 강정호의 팀내 역할은 대타 및 대수비 요원이란게 정설이었다.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인 올해에 한해 구단이나 허들 감독 모두 그가 팀과 리그에 잘 적응해 주길 바라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아직 기대치 않는 분위기였다.

강정호의 행선지가 피츠버그로 결정될 당시 상당수 국내 야구전문가 역시 이와 같은 의견을 내놨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고참선수들이 동일 포지션에 이미 있는 상황에서 강정호의 주전 도약은 내년 이후나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던 것.

그러나 현재 피츠버그 타선이 전체적으로 좋지 못한 상황이고 특히 내야수들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보니 강정호의 조기 선발 정착 가능서에 점차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이와 관련 강정호는 과거에도 이와 비슷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넥센 히어로즈의 전신인 현대에 입단한 직후에도 그는 교체보다 선발출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했다.

특히 강정호는 프로진출 당시 포수 포지션에서 내야수로 수비위치를 변경했었는데 팀의 주전 유격수로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었다. 지금 강정호가 보여주고 있는 ‘선못보’ 본능이 미국에 가서야 생겨난 것은 아니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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