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10구단 ‘들여다 보니’

[월요신문 이지현 기자] 2015년 3월 28일, 기나긴 겨울을 지내고 따스한 봄, 드디어 야구시즌이 찾아왔다. 올해는 KT 위즈의 가세로 10구단 체제가 꾸려지면서 경기수가 576경기에서 720경기로 144경기나 늘었다. 지난해 경기당 평균 관중인 1만1302명만 유치해도 올해 총 예상 관중은 813만7440명으로 800만 관중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두산베어스 팬들이 V4를 기원하며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믿음의 김인식 감독, 믿고보는 경기

김인식 감독이 OB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9년으로, 박용민 사장이 감독직을 제의했다. 당시 김 감독은 해태에서 계속 코치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쌍방울에서는 창단 감독 제의가 있었다. 고심 끝에 쌍방울 창단 감독이 됐지만 전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하위권에서 맴돌았다. 3년 계약이 끝나자 만년 꼴찌의 책임을 지고 미련 없이 물러났지만 어느 팀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2년의 야인 생활을 거쳐 OB에서 야구 인생 최고의 해를 맞은 것이다.

1996년에는 다시 최하위로 추락했지만 1997년 5위를 시작으로 해서 매년 한 계단씩 상승했다.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LG를 4승 2패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막강 현대와 7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고배를 마셨다.

2001년 두산은 믿기지 않은 우승 드라마를 쓰며 ‘미라클 두산’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1992년 롯데와 함께 유일하게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서 한국시리즈 왕좌에 올랐기 때문이다. 두산이 역대 최저 승률(0.508)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철옹성을 쌓은 불펜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마무리 투수 진필중을 비롯해 이혜천, 차명주, 박명환, 장성진 등이 막강 불펜을 구축했다. 이 해 거둔 65승 중 절반에 가까운 29승이 구원승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10승 투수가 한 명도 없이 한국시리즈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두산 특유의 뚝심이 발휘됐기 때문이다. 2연승을 거둔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를 제외한 현대와의 플레이오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첫 판을 내주고 역전승하는 저력을 나타냈다. 특히 한국시리즈 1차전 패배 후 2차전이 우천 취소된 것은 두산의 열성에 반한 신의 선물이었다.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두산은 2차전부터 4차전을 내리 이기며 분위기를 잡았고 6차전에서 6-5로 신승을 거두며 4승 2패로 ‘V3’를 달성했다.

김경문 감독 취임, 화수분 야구 구축

2003년 10월 10일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두산은 팀 재정비와 분위기 쇄신을 위해 김경문 배터리 코치를 제7대 감독에 선임했다.

김 감독은 “두산 특유의 팀 컬러인 뚝심을 잘 살려 팬들이 실망하지 않는 플레이를 펼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 말 그대로 김 감독의 뚝심은 유망주를 발굴하는 매의 눈을 가진 스카우트팀과 선진화된 2군 운영 시스템과 결합해서 ‘화수분 야구’를 구축했다.

외부에서 비싼 선수를 사오지 않고서도 뛰어난 선수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화수분 야구의 핵심은 균등한 기회를 통한 경쟁에 있다. 김 감독은 과거 명성이 아닌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를 주면서 내부 경쟁을 강화했다. 기존의 주전 선수들에게는 긴장감을, 후보 선수들에게는 희망을 줬다. 후보 선수가 주전 선수가 되고 2군 선수가 1군 선수가 된 것. 한때 가고 싶지 않은 구단에서 가장 뛰고 싶은 구단으로 환골탈태했다.

이 과정을 통해 김현수, 이종욱, 손시헌, 고영민, 양의지, 이성열, 오재원 등 유망주들이 성장했고 김동주, 최준석, 김선우, 임재철, 정재훈 등 중견 선수들이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기량 향상에 힘썼다. 그 결과, 2006년을 제외하고 2004년부터 2010년까지 6차례나 가을 야구에 참가했다. 2005, 2007, 2008년에는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항상 우승에 도전하는 팀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또 두산과 SK와의 2년 연속 한국시리즈(2007, 2008년)를 통해 한국야구가 질적 발전을 이룬 것은 어느 야구인이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야구에 상대를 압박하는 스피드가 도입된 것. 타자의 빠른 배트 스피드, 주자의 전력질주, 수비의 재빠른 공 처리는 경기에 박진감과 긴박감을 더하며 경기 질을 높였고 야구팬은 열광했다. 이 스피드 야구가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과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밑거름이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11년 6월 13일 김 감독은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중도 사퇴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이 되지 못했지만 김 감독이 명감독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믿을 수 없는 전승 금메달과 통산 5할 4푼 2리라는 높은 승률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김 감독에 이어 김광수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고 매 경기 포기하지 않는 야구를 그라운드에 수놓으며 두산다운 끈기를 발휘하고 있다.

올해 두산은 김태형 감독의 지휘아래 10구단 중 1위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리고 있다. 현재 두산은 삼성 라이온즈와 게임차가 없지만 승률에 있어서 두산이 0.011포인트 앞서고 있다.

   
지난 4월 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넥센과 두산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두산 마야가 환호하고 있다.

두산이 사랑받는 진짜이유는….

기복없이 곰 같은 우직함으로 명문구단으로서의 성적과 입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두산베어스 전력의 핵심은 바로 2군 전용구장 이천 베어스필드다. 리그 최고의 팜(farm) 시스템과 2군 관리 및 운영의 모범답안으로서 중심에 위치한 이천 베어스필드는 지난 2005년 150억원의 비용으로 건립된 2군 전용구장이다. 잠실야구장과 비슷한 규격의 야구장과 함께 실내연습장, 웨이트장, 숙소 등의 현대식 시설을 앞세워 최적의 코치진의 지도 속에 유망주와 신진급 선수들이 언제든지 1군에서 주전 선수로 뛸 수 있도록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두산은 2010년 8월 27일 3년 연속으로 홈 관중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야구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두산은 프로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사랑 나눔’을 기업문화로 삼아 어려운 환경에서 꿈을 키워가는 어린 선수들을 위한 야구 클리닉과 물품 지원은 물론, 다문화가정 어린이 초청행사 및 서울 시립 소년의 집 위문 방문 등으로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사랑의 안타, 홈런, 도루 행사를 통해 적립된 성금으로 청소년 및 장애인, 소외계층에 사랑을 전달하고 있다.

이밖에도 1995년 평생회원제를 실시함은 물론, 1998년 8개 구단 최초로 베어스 공식 웹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온·오프라인에서의 앞선 팬 서비스를 비롯해 ‘베어스데이’, ‘플레이어스데이’, ‘퀸스데이’ 등 팬과 함께 하는 다양한 이벤트로 두산베어스는 박진감 있는 야구경기를 통해 언제나 ‘최강 10번 타자’와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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