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카드에서 KBO 최고 이슈로 탈바꿈

[월요신문 이지현 기자] 왼손투수 권혁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온 이른바 ‘삼성왕조’의 시작점부터 함께 해온 선수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2002년 삼성 1차 지명을 받고 고향팀에 입단, 팀의 한국시리즈 연속 제패에 힘을 보탰고 2008년에는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러나 올시즌 한화로 이적하기 전 권혁의 팀내 처지는 상당히 좋지 못했다. 불펜층이 두터운 삼성에서 제구가 흔들리던 권혁의 자리가 더는 없었던 것이다.

   
빗속 역투 중인 한화 이글스 권혁. <사진제공= 뉴시스>

지난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FA) 선수로 풀린 권혁이 삼성 라이온즈를 떠나 한화 이글스로 이적할 당시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그가 과연 한화 구단과 김성근 감독 밑에서 전성기 시절 기량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회의론이 상당했다.

좋았던 시절 157km까지 나왔던 빠른볼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투구 패턴 역시 단조로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권혁은 위기상황에서 제구력가 심하게 흔들리는 경향을 보이며 안정적인 불펜 투수로서 신뢰도에 상당히 금이 간 상태였다.

그런 권혁이 현재 한화를 넘어 KBO리그 전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투수로 떠오르고 있다. 안정적인 경기운영은 물론 3일 연투도 마다하지 않은 투지를 보여주며 선수층 전체 전력이 취약해 지난 몇 년간 꼴찌를 도맡아 온 한화 구단에서 불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권혁의 선전은 팀 성적으로도 직결 현재 한화는 상위권 팀들이 가장 꺼려하는 다크호스팀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불꽃같던 전성기

권혁이란 투수가 야구팬들의 시선을 처음 사로 잡았던 것은 프로입단 5년차였던 2007년이었다. 프로 데뷔 당시부터 제구력에 문제가 있던 그가 이 시즌을 기점으로 제구에 안정감을 찾았던 것으로 그해 권혁은 중간계투임에도 불구 탈삼진 100개(중간계투 1위, 전체 1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같은 호성적에 힘입어 권혁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대표팀의 중간계투 요원으로 발탁돼 병역면제 혜택을 받기도 했으며 2009년에는 21개 홀드를 기록하며 홀드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후반기를 넘어서부터 권혁의 기량은 하향곡선을 그렸다. 속구 구속이 줄어들며 2피치(속구+슬라이더) 위주 단순한 투구패턴의 약점이 타자들에게 자주 공략당한 것. 제구력에서 있어서도 권혁은 또 다시 문제점을 노출 일부로부터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못하는 남자’로도 불렸다.

삼성의 불펜 투수진의 선수층이 두텁다는 것 또한 권혁에게는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젊은 투수들의 성장 속 더 이상 그가 승리조 역할을 할수 없게 된 것이다.

권혁의 한화 이적은 이같은 상황 속에서 이뤄졌다. 고향팀이자 전년도 우승팀 삼성을 떠나 한화에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한 것 자체가 선수로서 다시 한 번 비상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경기 승리 후 권혁을 격려하는 김성근 감독. <사진제공= 뉴시스>

비상에 성공한 좌완 파이어볼러

2014년 11월 권혁은 한화와 4년 32억원의 FA계약을 체결했다. 70~80억원대 FA계약과 비교하며 다소 초래해 보일수도 있는 계약규모였으나 지난 3년간 성적을 감안하면 나쁜 조건도 아니었다는 것이 야구계의 일반적인 평이다.

그리고 현재 한화 구단은 권혁과의 FA계약에 쾌차를 부르고 있다. 5월 19일 기준 총 24게임에 출전하며 3승 3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3.55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으로 이는 SK 정우람과 함께 KBO 전체 구원투수 성적 가운데 가장 빼어난 수준으로 분류된다.

삼성을 떠나 한화에 새롭게 둥지를 튼 그가 기대이상의 활약을 이어가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는 그를 불러준 김성근 감독과의 호흡이 우선 거론된다. 두가지 구종 위주로 던지던 그가 김 감독을 만나 올시즌 수준급의 체인지업을 장착 성과를 내고 있는 것.

본인 스스로의 하고자 하는 의지와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는 점 역시 주목받고 있다. 실제 권혁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이번 시즌 맹활약 비결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컸다’고 밝힌 바 있으며, 삼성 시절 언제나 표정 변화가 없던 얼굴에서 경기결과에 따라 그때그때 기분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등 상당히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권혁의 선전 관련 한화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 역시 무시 못할 부분이다. 지난 17일 넥센과의 홈경기에서는 투수인 그가 9회 말 타석에 들어서자 팀의 간판타자 김태균의 등장때보다 더 큰 함성이 들려오기도 했다.

과부하에 대한 우려 나와

권혁의 선전 관련 야구계 일각에서는 과부하에 대한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현재 기준 올시즌 가장 많이 등판한 투수가 그이다 보니 조만간 몸에 무리가 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 어린 시선들이 상당한 것. 선수 본인 역시 이 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권혁은 “오래 야구를 하고 싶다. 내 몸은 내가 아껴야 한다. 힘들면 코칭스태프에 직접 말하겠다”며 “니시모토 투수코치, 홍남일 트레이닝 코치, 김성근 감독이 늘 내 몸 상태를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현재 팀의 수호신으로서 본인의 역할 및 활약에 대해 나름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어 팬들의 기대에 충족코자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하고 싶다는 욕심도 함께 밝히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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