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10구단 ‘들여다 보니’

[월요신문 이지현 기자] 2015년 3월 28일, 기나긴 겨울을 지내고 따스한 봄, 드디어 야구시즌이 찾아왔다. 올해는 KT 위즈의 가세로 10구단 체제가 꾸려지면서 경기수가 576경기에서 720경기로 144경기나 늘었다. 지난해 경기당 평균 관중인 1만1302명만 유치해도 올해 총 예상 관중은 813만7440명으로 800만 관중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SK와이번스 엠블럼.

인천의 자존심, SK와이번스를 소개합니다

김트리오의 ‘연안부두’는 오랫동안 인천야구를 대표해온 응원가다.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부터 현재의 SK 와이번스까지,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동안에도 항상 인천의 야구장에는 ‘말해다오’를 외치는 구슬픈 곡조의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돌아보면 ‘연안부두’는 마치 인천야구의 운명을 예언한 노래처럼 들린다.

노랫말처럼 인천의 야구팀들은 ‘어쩌다 한번 오는’ 배처럼 찾아와 인천 팬들의 ‘마음마다 설레게’ 했지만, 잠깐 머물다 떠나가길 반복했다. 삼미와 청보, 태평양이 정붙일 새도 없이 순식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현대 유니콘스는 팬들의 사랑을 배신하고 야반도주했다. 인천 팬들의 가슴에는 오래도록 아물지 않을 커다란 생채기가 났다.

‘현대’ 태풍으로 상처 입은 연안부두에 찾아온 다섯 번째 배의 이름은 SK 와이번스. SK는 3차례 한국시리즈 우승과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등 빼어난 성적은 물론, ‘스포테인먼트’를 앞세운 관중동원으로 성적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인천야구의 새로운 역사가 SK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당초 SK가 원한 연고지는 인천이 아닌 서울이었다. 2000년 2월 1일 그룹 고위 관계자가 “신생팀인 우리로서는 시장성과 흥행성이 큰 서울을 연고지로 원하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고, 같은 달 16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출한 가입신청서에도 희망 연고지는 서울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열린 KBO 정기총회에서는 ‘신규 구단 SK의 지역권은 수원으로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는 이미 1999년의 KBO 이사회에서 현대 유니콘스의 서울 이전이 결정된 상태였기 때문. 당시 이사회에서는 ‘2000년 시즌 후반기부터 현대는 서울을 연고로 한다’는 내용으로 정확한 이전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결정문을 발표했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 박지원 장관이 “연고지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지만 총재가 리더십을 발휘해 정상적으로 리그가 시작되게 해 달라”고 발언하며 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하자, SK는 결국 2월 23일 ‘지역연고를 수원을 포함한 경기도로 변경해 준다면 서울을 포기할 수 있다’고 한 발 물러섰다. 결국 3월 15일 KBO 이사회에서 ‘SK 연고지는 인천, 현대는 2001년 후반기에 서울로 이전하는 조건으로 수원을 연고지로 삼는다’는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3월 18일 SK는 연고지를 ‘인천’으로 표기한 정식 창단신청서를 제출했다.

SK 마스코트는 ‘비룡’이란 뜻의 ‘와이번스(Wyverns)'로 정해졌다. “날개가 달리고 두 개의 다리와 화살촉 모양의 꼬리를 가진 상상 속의 동물”로 “용중의 왕인데다 새천년 ‘용의 해’를 맞아 새로이 도약하자는 뜻에서 팀 이름으로 결정하게 됐다”는 게 당시 안용태 창단준비팀장의 설명이다. 또한 초대 사령탑에는 강병철 전 한화 감독이, 수석코치로는 쌍방울 감독대행으로 마지막을 함께한 김준환(현 원광대 감독)이 각각 선임됐다.

한편 SK의 창단은 기존 쌍방울 레이더스의 인수 형식이 아닌, 새로 팀을 창단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IMF 직격탄을 맞고 법정 관리 중이던 쌍방울은 야구단 매각을 통해 최대한 많은 금액을 받아낼 계획이었다.

이에 7개 외국기업과 2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협상을 벌였고 외국기업을 상대로 약 2000만 달러, 국내기업에게는 약 200억 원의 인수 대금을 요구했다. 당시 한창 프로야구 참여를 타진하던 SK 입장에서는 굳이 그 많은 돈을 쌍방울에 지불하고 야구팀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는 KBO와 직접 협상을 통해 연고지 이전, 선수보강 등 여러 부면에서 혜택을 얻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결국 회생에 실패한 쌍방울은 2000년 1월 7일 ‘금일 자로 (주)쌍방울은 KBO의 쌍방울 레이더스 법정 퇴출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내용의 팩스 한 통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회적 여망을 받아들여 야구단 창단을 검토하겠다‘는 손길승 SK 회장의 발언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2월 1일이었다. SK가 쌍방울과 전혀 무관한 팀이 된 사연이다.

KBO에 가입금 250억원을 납부하고 신생 구단의 자격을 얻은 SK는 전력보강 차원에서 ‘각 구단 보호선수 23명 외 1명, 2001년 신인 2차 지명 3명, 외국인 선수 3명 보유-2명 출장’ 등의 혜택을 얻어냈다. 그리고 7개 구단 보호선수에서 제외된 7명(강병규, 권명철, 김태석, 김종헌, 장광호, 김충민, 송재익)에 지명권을 행사했다. 여기에 웨이버 공시된 쌍방울 선수 50명을 전원 영입해 창단 멤버 구성을 완료했다. 2000년 3월 31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인천의 새로운 구단 SK 와이번스의 공식 창단 행사가 열렸다.

오합지졸 창단초기

SK 와이번스의 출발은 상큼했다. 2000년 4월 5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의 개막 경기. 두 팀 다 유니폼이 파란색이라 관중들이 “누가 홈팀이고 누가 원정인지” 헷갈리는 가운데, SK는 3-2로승리를 거뒀다. 롯데 출신 김태석이 7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텼고, 신인 좌완 이승호가 세이브를 따냈다. ‘철인’ 최태원은 5회초 삼성 노장진을 상대로 2점 홈런을 쏘아 올려 구단 1호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4월 8일 도원구장에서 열린 홈 개막전도 역시 SK의 승리였다. SK는 선발로 나선 박정현의 호투에 이승호가 또 한 번 마무리에 성공하며 7-3으로 이겼다. 특히 이승호는 1실점하긴 했지만 8개의 아웃카운트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 내며 괴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돌풍은 거기까지였다. SK는 4월 14일 두산전에서 6-10으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4월 23일 홈 현대전까지 9연패 늪에 빠졌다. 또 6월 22일부터 7월 5일 사이에도 또 한 차례 11연패를 당하는 등 신생팀의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SK는 시즌 성적 44승 3무 86패(.338)을 기록하며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신인왕을 따낸 이승호의 활약(10승 9세이브)과 최태원의 ‘700경기 연속 출장’ 대기록(6월 18일 한화전에서 달성)이 팬들에겐 위안거리였다.

최하위로 끝난 창단 첫 해지만 소득도 있었다. 2000년 6월 1일, 해태와의 맞트레이드(<-> 성영재)를 통해 영입한 이호준은 이후 SK의 중심타자로 성장했다. 또 처음 참가한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초고교급 포수 정상호를 비롯해 김희걸, 김강민, 박남섭, 채병용, 조중근, 박재상 등 수준급 선수를 대거 지명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들 중 정상호, 김강민, 박재상은 현재 SK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같은 해 7월 7일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김경기는 성적과는 별개로 인천 팬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전력 보강을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2000년 11월 29일 열린 KBO 이사회에서 리그 1, 2위 팀인 현대와 두산에서 보호선수 1명씩을 받기로 결정된 뒤, SK는 현대에서 투수 조규제와 조웅천을, 두산에서 내야수 강혁을 각각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12월 4일에는 쌍방울 시절 지명한 국가대표 서브마린 투수 정대현이 팀에 입단했고, 베테랑 포수 강성우가 트레이드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2001년 4월에는 거포 내야수 안재만을 LG와 1:2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5월 31일에는 해태에서 양현석을 받고 이동수와 가내영을 내주는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잇단 전력보강의 효과일까.

2001년, SK는 60승 2무 71패를 기록하며 창단 2년 만에 꼴찌에서 벗어났다.

SK 선수 영입의 결정판은 2001년 12월 16일 성사된 삼성과의 6:2 초대형 트레이드였다. SK는 삼성에 브리또와 오상민을 내주고 김기태, 김동수, 정경배, 이용훈, 김상진, 김태한 등 즉시전력감 선수 6명을 받는데 성공했다.

브리또가 대체 가능한 외국인 선수라는 점을 고려하면,오상민 하나를 주고 선수 6명을 받은 셈이었다. 이 트레이드는 SK가 창단 초기 이른 시간 내에 강팀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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