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힘드시죠? 저희 펀드 상품만 좋아요"

   
 

잊혀진 '동양사태', 여전히 무거운 계열사 판매비중

[월요신문 안소윤 기자] 지난 2013년 전국민에게 금융 패닉을 선사한 동양사태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금융권 기업들이 자사 계열기업에 대한 일감몰아주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논란이다.

1%대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예금은 싫고, 주식투자의 위험성은 부담스러운 투자자들이 펀드로 몰리고 있다. 수시입출금식 예금은 물론, 은행 적금상품 마저 최근 연 1%후반~2%초반 대 금리를 제공하면서 보수적인 은행 고객들까지 펀드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이 같은 분위기에 은행들도 펀드 판매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일부 은행은 펀드 상품 계열 운용사 상품을 앞세우는 등 금융당국의 규제를 무시한 채 일감 몰아주기에 나서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펀드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된 '펀드50%룰'도 무색한 지경이다.

활기 찾은 펀드, 고객잡기 혈안

은행권 및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한, KB국민, NH농협 등 7개 은행의 2015년 1분기 계열 자산운용사 신규 펀드 판매잔액은 1조990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 1조4172억원과 비교하면 31%나 급증한 수치다.

특히 KB국민은행의 계열 운용사 '일감 몰아주기'가 가장 심각하다. 판매사 가운데 유일하게 계열사 비중이 50%를 넘긴 것. 이는 금융당국의 '펀드 50%룰'을 위반한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던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문제 지적은 지난 2013년 '동양사태' 직후, 금융권에서 자사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막자는 취지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동양사태 당시 펀드를 판매할 때 계영 운용사 펀드를 밀어주는 행태가 고객 수익률 붕괴 원인 1순위로 지적됐기 때문.

이에 금융위원회는 부당영업행위를 제한하기 위해 금융투자업 규정을 개정, '펀드50%룰'을 도입했다.

'펀드50% 룰'이란 은행, 증권, 보험사 등 펀드 판매사가 계열 자산운용사의 펀드를 팔 때 공모펀드(일부 전문투자자 대상 펀드 제외) 신규 판매액 대비 계열 운용사 펀드 판매액 비중을 50% 이하로 제한하는 일종의 비율 규제다.

그러나 금투협이 공시한 '계열 운용사 신규판매비중'에 따르면 국민은행의 2015년 1분기 KB자산운용 신규 펀드 판매잔액은 8435억원으로, 전체 펀드 판매 비중의 58.49%를 차지했다. 바로 전 분기에서 KB자산운용 비중이 29.41%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국민은행의 계열 운용사 펀드 신규판매 비중은 기준금리 1%대 진입 이후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금융위가 지난 3월 '펀드50%룰'을 2017년 3월 말까지로 연장한 만큼, 국민은행은 올해 12월까지 계열사 펀드판매 비중을 절반 이하로 낮추지 않으면 불건전영업행위로 간주돼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게 된다. 사업연도말 기준으로 50%를 초과한 경우 판매사는 50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며 현재까지 규정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 받은 판매사는 없다.

이와 관련 국민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올초부터 KB자산운용 펀드들 성과가 굉장히 좋았다. 흔히 알려져 있는 'KB벨류포커스' 외에도 'KB통중국' 펀드상품 등이 수익률 상위권에 랭크되며 고객 수요가 높았다. 은행의 별다른 판촉 시동 없이도 고객들이 먼저 찾을 정도로 계열사 상품이 독창적으로 잘하고 있는 것이지 '일감 몰아주기'와 다르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사측 역시 '펀드50%룰'을 어기면 패널티 받는 것을 알고 있고, 어기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이 때문에 인기 좋은 상품을 울며 겨자 먹기로 폐기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요가 많았던 '중국레버리지' 펀드를 다른 운용사 유사 펀드로 교체해 내렸다"고 전했다.

'권고'와 정반대, 대다수 금융권 계열사 펀드 판매 집중

타 은행들도 '펀드50%룰' 경계만을 지켰을 뿐 계열사 펀드 판매 집중 현상은 닮은 꼴이다.

산업은행에서 판매하는 KDB자산운용의 신규 펀드 판매잔액은 298억원으로 KDB자산운용의 전체 판매액 가운데 39.80%에 달한다. 규모는 시중은행보다 적은 편이지만, 바로 전 분기 비중 5.09%에 비하면 무려 8배 가까이 급상승했다.

이밖에 신한은행은 신한BNPP자산운용 35.91%, 기업은행 IBK자산운용 32.55%, NH-CA자산운용 22%, 하나은행 하나UBS자산운용 9%, 외환은행 하나UBS자산운용 2% 등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은행의 계열사 밀어주기가 좀처럼 줄지 않는 이유는 직원들의 핵심성과지표(KPI)에 펀드판매 실적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계열사 펀드를 판매하면 우선점을 준다.

실제 계열사 펀드판매 비중이 낮은 일부 행은 올해 '계열사 협업 배점'을 신설하기도 했다.

'펀드50%룰'도입 당시 금융당국은 계열사 펀드 판매 시 직원에게 줬던 인센티브 제도를 폐지하라고 권고했던 것을 감안하면 정 반대되는 움직임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들을 고객이 모두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상담을 진행할 때 펀드 경쟁력보다 계열사 펀드를 우선 추천하기 때문에 고객 선택의 폭은 그만큼 줄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50%룰이 도입되면서 직원들 KPI에 계열사 펀드판매 항목이 줄기는 했지만, 실적평가 기준인 KPI(핵심성과지표)를 일시적으로 높여준다든지 등의 방법으로 계열사 상품 판매를 유도할 수 있다"며 "영업 일선에서는 관계사 상품이라는 심리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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