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에서 ‘혼용무도’까지 공통점은 ‘갈등과 분열’

▲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 ‘昏庸無道’는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가 추천한 것으로, 당나라 때 문필가 손과정의 『書譜』에서 이 교수가 직접 집자했다. <사진제공=교수신문>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대학교수들이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택했다. 혼용무도란 ‘세상이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어지럽고 무도(無道)하다’란 뜻이다. ‘혼용’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과 용군을 합친 말이고, ‘무도’는 사람이 걸어야 할 정상적인 궤도가 붕괴된 야만의 상태를 의미한다. 각박해진 사회분위기의 책임을 군주, 다시 말해 지도자에게 묻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는 논어(論語)의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유래했다. 혼용무도 외에 후보에 오른 사자성어는 ▲사시이비(似是而非)(14.3%) ▲갈택이어(竭澤而漁)(13.6%) ▲위여누란(危如累卵)(6.5%) ▲각주구검(刻舟求劍)(6.4%) 등이다. <월요신문>은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첫 선정된 해인 2001년부터 2015년까지 되짚어봤다.

▲2001년 오리무중(五里霧中)

- 깊은 안개 속에 들어서게 되면 길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무슨 일에 대해 알 길이 없음.

DJP공조 붕괴, 언론사 세무조사로 인한 정부와 언론 갈등, 사범대생 초등교원 임원에 반발한 교대생 등 교육계와의 마찰, 9·11테러로 인한 국제정세 불안, 건강보험 재정 파탄 위기, 계약제와 연봉제 도입으로 인한 고용불안 등이 2001년을 채웠다. IMF 관리체제 졸업과 인천공항 완공도 빠질 수 없는 사건이었다.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

- 헤어진 무리가 다시 모이고, 모였던 무리가 다시 흩어지는 모습

월드컵 4강 진출이 가장 크게 기억되는 2002년은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으로 촉발된 촛불시위, 북한군과의 서해교전(이후 제2연평해전으로 바뀜), 태풍 루사 강타 등 여러 사건이 있었다. ‘이합집산’은 16대 대통령 선거과정을 빗댄 사자성어였다. 대선을 앞두고 ‘헤쳐 모여’를 연발한 정치인들과 권력과 실리를 좇아 움직여 ‘철새’라는 별칭을 회자했던 2002년을 대표하여 선정하였다.

▲2003년 우왕좌왕(右往左往)

-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일의 처리나 나아가는 방향을 종잡지 못함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치, 외교, 경제 등 국정 운영에 있어 혼선을 빚으며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갈 곳 잃는 모습을 보인 것이 ‘우왕좌왕’의 가장 큰 선정이유였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대선 자금 파문과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 발언을 비롯한 정치적 사건과 부안 핵폐기장 건설, 부동산 가격폭등, 대구 지하철 참사 등 경제 사회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

-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는 공격함

2004년은 정쟁의 한 해였다. 정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건은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사태다. 이후 신행정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폐지안, 언론관계법, 사립학교법 개정안, 과거사규명법 등을 둘러싼 여야의 지리멸렬한 모습에서 상대를 설득하는 논리나 합리적 대화는 없었다고 교수들은 평했다. 연초부터 세밑까지 정치권이 정파적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운 모습에서 ‘당동벌이‘의 선정 이유였다.

▲2005년 상화하택(上火下澤)

- 불이 위에 놓이고 못이 아래에 놓인 모습으로 사물들이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

2004년에 이은 소모적인 분열과 갈등이 ‘상화하택’의 선정 배경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와 한나라당의 거절, 행정복합도시 건설을 둘러싼 비생산적인 논쟁과 지역갈등, 해방 60주년이 되어도 계속되는 이념갈등에서 볼 수 있듯이 상생하지 못하고 분열만을 거듭했다. 또한 안기부 도청 파문,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의혹, 쌀시장 개방안 비준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화합하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이 이어진 한 해였다.

▲2006년 밀운불우(密雲不雨)

- 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

2006년을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풀이하는 사자성어는 ‘밀운불우’(48.6%)였다. 체증에 걸린 듯 순탄하게 풀리지 않는 한국의 정치와 경제, 동북아 정세가 가장 큰 선정 배경이었다. 상생정치의 실종,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로 인해 오히려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중심이 되고, 이에 따라 사회 각층의 불만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것이다. 교수들은 또, 치솟는 부동산 가격,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돼 갈등을 불러일으킨 한미 FTA 협상 등은 국민들에게 답답함만을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북한의 핵실험으로 결과적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이 더욱 어렵게 된 점은 답답함을 넘어 불안감을 준 사실로 거론했다.

▲2007년 자기기인(自欺欺人)

-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인다

설문에 응답한 교수 340명 가운데 43%가 ‘자기기인’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각종 비리와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2007년은 각 분야의 도덕성 결함이 드러난 사건들이 많았다. 신정아 사건으로 시작한 학계·문화예술계의 학력위조 문제는 ‘실력보다 간판’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병폐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였다. 이전까지의 ‘올해의 사자성어’가 정권에 대한 불신과 실망을 표현했다면 2007년은 사회 지도층 전반의 도덕 불감증을 빗댄 사자성어를 꼽은 것이 특징이었다. 이외에도 이 해에는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삼성 비자금 폭로, 태안 원유 유출 등의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

▲2008년 호질기의(護疾忌醫)

-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기를 꺼림. 잘못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이 바로 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음

이명박 정부 출범 첫 해인 2008년을 돌아보며 교수들은 귀를 열고 전문가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로 ‘호질기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미국산 쇠고기 파문, 촛불시위, 미국발 금융위기를 처리하는 정부의 대응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또한 위기 상황에 걸맞은 현실 진단과 내놓은 전망이 바람직하지 못했으며, 미봉책과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키웠다고 꼬집었다. 사회적으로는 숭례문 방화 사건, 최진실 등 연예인 자살, 삼성 특검 등의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2009년 방기곡경(旁岐曲逕)

- 샛길과 굽은 길이라는 뜻으로 일을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교수들은 정부가 굵직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과 국정운영 방식에 아쉬움을 지적하며 ‘방기곡경’을 2008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특히 정치권과 정부에서 세종시법 수정과 4대강 사업, 미디어법 처리 등 여러 정치적 갈등을 안고 있는 문제를 국민의 동의와 같은 정당한 방법을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해온 행태를 ‘방기곡경’에 비유했다. 더불어 여러 현안들을 진솔하고 정정당당한 방식으로 접근하기를 주문하며 한국 정치가 올바르고 큰 길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소망까지 반영하여 사자성어를 선정했다고 했다.

한편, 2008년 가장 안타까운 일로는 김수환 추기경과 김대중·노무현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꼽은 응답자들이 가장 많았다.

▲2010년 장두노미(藏頭露尾)

-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드러나 보이는 모습으로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 숨기려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가 이미 드러나 보인다는 뜻

2010년 응답한 교수 212명 가운데 41%가 ‘장두노미’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다. 한 교수는 “2010년은 민간인 불법사찰, 한미 FTA협상, 새해 예산안 졸속 통과 등 수많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진실을 덮고 감추기에 급급했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응답자들은 정부가 제기된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소하지 못했다는 평가에 대부분 동의했다. 교수들은 “공정한 사회를 표방하지만 정작 이명박 정부는 불공정한 행태를 반복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올해는 천안함 침몰, 민간인 사찰, 검찰의 편파 수사 등 의혹이 남는 사건들이 유독 많았다”며 “반대 여론이 많은 한미 FTA타결도 잘한 일이라고 강변하는 모습은 장두노미의 의미와 맞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20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

- 자기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지만 소용없음을 의미

304명의 응답자 가운데 36.8%가 2011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엄이도종’을 선택했다. 선택의 공통된 이유는 ‘소통 부재’로 꼽을 수 있었다. 응답자들은 대통령 측근 비리, 내곡동 사저 부지 불법 매입, 한미 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통과, 선관위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공격 등 일련의 사건·사고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킬 명확한 해명은 없었다며 꼬집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며, 여론의 향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자세에 대해 비판했다.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

- 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서는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든 처지를 나타내는 의미

2012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는 626명의 응답자 중 28.1%가 선택한 ‘거세개탁’이었다. 총선과 대선이 겹쳤던 2012년을 고려해 학계의 많은 이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교수는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지식인과 교수들마저 정치참여를 빌미로 이리저리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파당적 언행을 일삼는다. 진영논리와 당파적 견강부회가 넘쳐나 세상이 더욱 어지럽고 혼탁해진다”며 2012년을 평가했다. 더불어 MB정부의 공공성 붕괴, 공무원 사회의 부패 등 사회 전반의 혼탁함에 대해 우려와 아쉬움을 드러내는 의견들이 많았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으로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전국 대학교수 622명 설문조사 결과 32.7%가 선택한 ‘도행역시’가 2013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다. 대다수 응답자들은 미래 지향적 가치를 주문하는 국민적 열망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과거 회귀적 모습을 보인 박근혜 정부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지적하는 동시에 경제민주화와 같은 대선 공약들이 파기되고 공안통치 및 양극화 심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뜻으로 고의적으로 옳고 그름을 바꾸는 것을 의미

응답한 724명의 교수 중 201명(27.8%)이 2014년을 대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꼽았다.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 “온갖 거짓이 진실인 양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며 “세월호 참사, 정윤회 국정 개입 사건 등을 보면 정부가 사건 본질을 호도했다”고 지적했다.

갈등과 분열이 계속된 21세기 한국 사회

‘올해의 사자성어’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15번에 걸친 ‘올해의 사자성어’에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정치권의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이다. 또한 비리와 부패로 점철된 사회 지도층의 문제도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고 있다. 2016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희망 깃든 성어가 선정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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