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국부 발언, 호남 민심 역린 건드려

▲ 국민의당 전남도당 창당대회.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이신영 기자]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 당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안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지 정확히 40일만이다. 위기의 요체는 ‘선명성’이다. 국민의 당으로 당명을 확정한 때가 1월 9일. 이후 야당같지 않은 야당, 신당같지 않은 신당의 모습을 보이며 좌충우돌하고 있다. 특히 호남 민심이 심상치 않다.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직후 안의원에 대한 호남의 기대감은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대권 고지를 눈앞에 둔 안 의원에게 호남은 전략적 요충지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무호남 무국가’를 제창했듯 안 의원 역시 호남은 반드시 확보해야 할 교두보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국민의 당 창당준비위원회는 21일 광주 전남에서 첫 창당 깃발을 꽂았다. 이 자리에서 안 의원은 “우리 국민의 당이 제1야당이 되면 한국 정치의 혁명적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상진 창준위 공동위원장도 최근 이승만 국부 발언 논란을 의식한 듯 “국보위에 참여한 분(김종인 위원장)에게 모든 것을 갖다 바치는 낡은 정당과는 분연하게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민, 국민의 당 정체성에 의문 던져

안철수 의원의 주된 타깃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더민주당은 김종인 위원장 등 새 인물 영입에 잇따라 호평을 받으면서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호남 민심의 풍향계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 1월 3주차 집계에 따르면 국민의 당은 32.8%로 전주 대비 6% 포인트 하락한 반면 더민주당은 25.9%로 6% 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15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광주·전남에서 더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 당을 추월했다.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선두를 달렸다. 문 대표는 20.6%(전주대비 1.7%p↑),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8.0%(0.3%p↑),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14.9%(2.9%p↓)의 지지율을 보였다. 이 여론조사 수치는 탈당 직후만 해도 안철수 의원에 대해 우호적이던 민심이 하향세로 돌아섰음을 뜻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치 전문가들은 ▲불분명한 당 정체성 ▲외부 인사 영입 실패 ▲당내 파열음 등을 꼽는다.

당 정체성은 한상진 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이 불씨를 확산시켰다. 이승만 국부 발언이 알려진 후 호남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국민의 당 창당대회가 열린 김대중컨벤션센터 부근 주민은 “4·19 묘역에 가서 이승만을 국부하고 칭송한 것은 희생자들의 뺨을 때린 행위다. 국민의 당은 야당이 아니라 보수 우익 정당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한 대학생은 “나라를 버리고 도망치듯 망명한 사람을 국부로 볼 수 있나. 광주 사람들은 독재자에 대해 거부 정서가 있는데 국민의 당이 그걸 미화하면 광주 민심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반응은 광주 전남 지역 시민단체들도 비슷하다. 광주 지역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안철수 의원이 탈당할 때만 해도 새정치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영입된 사람을 보니 새로운 인물이 없다. 호남을 볼모로 정치하려는 사람을 배격하자는 것이 지역 정서인데 잘못 하면 국민의 당이 배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영입 인사 실패도 지지율 하락 주요 원인

영입 인사 실패도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다. 이중 가장 논란을 부른 이는 신학용 의원이다. 국민의 당은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신학용 의원을 영입했다. 그 전에 안철수 의원은 “부패 혐의로 기소만 돼도 당원권을 정지하고 공천에서 배제한다”고 한 원칙을 천명했었다. 그 원칙에 따르면 신 의원은 입당 불가자다. 하지만 안 의원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영입했다. 신 의원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으니 문제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허신행 전 농수산부장관의 경우, 영입을 발표했다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취소해 항간에선 “안철수의 영입 기준이 도대체 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 당이 이명박 정권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영입도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당 정체성에 혼란을 주고 있다.

안 의원이 당을 하나로 결속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2012년 대선 때부터 안 의원 곁을 지킨 측근 그룹과 영입 그룹간 갈등설이 심심찮게 표출되고 있는 것. 대표적인 사례가 김한길 의원의 창당대회 불참이다.

21일 거행된 국민의 당 창당대회는 호남 지지율의 반등을 노린 것이다. 김한길 의원은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 의원은 국민의 당 상임부위원장으로 안철수 의원과 함께 당을 이끄는 ‘투 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의 공식 행사에 불참한 이유에 대해 김 의원 “대표나 중요한 사람들이 공식 행사에 너무 몰려다닐 필요는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인선 문제 등을 놓고 이견이 생겼고 특히 안 의원 측근그룹과의 갈등이 불참 배경이 아내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더민주당 탈당 주춤, 반전세로 돌아서

반면 더민주당은 반전에 시동을 걸었다. 호남발 ‘엑소더스’에 시달리던 더민주당은 김종인 위원장 영입에 이어 당내 전북 의원들의 잔류 선언으로 도미노 탈당 현상이 사라졌다. 이용섭 전 의원의 복당 선언도 분위기 반전에 도움이 됐다. 21일 박지원 의원이 탈당했지만 더민주당의 상승세를 꺾을 정도는 아니다.

이와 관련 더민주당 관계자는 ““호남에서는 더민주가 6대 4 정도로 국민의 당에 뒤지고 있었는데, 이용섭 전 의원의 복당과 전북 의원들의 잔류 선언, 문재인 대표의 사퇴 의사로 반전의 물꼬를 텄다. 이제 남은 건 국민의 당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남 민심은 설 연휴와 공천이 완료되는 시점을 전후로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문재인 대표가 대표직을 공식 사퇴하면 호남 민심이 더민주당으로 돌아설 거라는 관측도 있다. 국민의 당에 주어진 시간은 그때까지다. 국민의 당이 그때까지 갈지자 행보를 계속하면 호남 민심은 더민주당으로 쏠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호남은 될성부른 나무에 거름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8년 총선 이후 호남은 한 번도 표심을 나눠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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