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중인 김제남 정의당 의원.

[월요신문 이신영 기자]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연일 화제에 오르면서 테러방지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다. 테러방지법을 놓고 찬반 양론도 뜨겁다. 테러방지법을 찬성하는 쪽은 북한의 핵개발 등 안보 리스크가 점증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대론자는 법안의 특성상 통신 감청·검열 등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는데다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강제하는 것은 위헌적 발상이라고 보는 때문이다.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테러방지법은 순조롭게 통과됐고 우리나라처럼 필리버스트 등을 통해 방해받는 일은 드물었다. 다만 시행과정에서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됐다. 현재는 법의 취지는 살리되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단계다. 테러방지법을 먼저 도입한 외국의 운영실태 및 시행착오 등에 대해 알아봤다.

 

미국 애국자법(Patriot Act)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방지법의 근간으로 불리는 ‘애국자법(Patriot Act)’을 제정했다. 미 의회는 연방수사국 등 수사기관의 대테러 활동을 강화하고 감청 및 수색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법안을 2001년 10월 통과시켰다.

테러 용의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수사기관의 유·무선 통신감청 권한을 확대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행정명령인 ‘국가안보레터’를 발송하면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와 은행, 신용카드사 등 민간기업은 가입자의 통신기록 또는 거래기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민간기업은 고객의 정보를 연방수사국에 제공했다는 사실조차 당사자에 알릴 수 없었다.

애국자법은 시행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인권단체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메일 검열 및 광범위한 통신감청으로 범죄와 상관없는 일반 시민의 통화내용까지 감청 대상에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 정부는 곤욕을 치렀다. 그 계기를 제공한 인물이 에드워드 스노든이다.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국내 테러 분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무차별 감청 등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시민단체는 정부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12월 워싱턴 지방법원은 “NSA의 정보 수집은 시민에 대한 부당한 압수 수색을 금지한 미국 수정헌법 4조를 위배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사진제공=뉴시스>

애국자법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법안 만료일인 지난해 6월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체법안으로 수사기관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킨 ‘미국 자유법(USA Freedom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는 NSA가 미국 시민의 통화 내용을 수집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며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성이 제기되면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명시했다.

 

중국 반테러주의법(反恐怖主义法)

중국에서도 올해 1월 반테러주의법(反恐怖主义法)이 발효됐다. 법안의 목적은 중국 안팎에서 발생한 모든 테러에 적극 대응한다는 것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정식 통과됐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사진제공=뉴시스>

중국은 반테러국가기구와 국가정보기구를 설립하고 대테러 전담 부대도 설립하기로 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인터넷·통신 기업은 공안 당국의 테러수사에 협조해야 하고 데이터 접속과 암호해제 등에 대한 기술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또 당국이 사전 승인한 보도를 제외하고 테러에 관한 내용이나 당국의 대응을 보도하는 것은 모두 금지된다. SNS·온라인 등에 테러 현장 사진을 올리는 것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신장이나 티베트 같은 지역에서 민족적 혹은 종교적 갈등으로 분쟁이 발생해도 외부에 알려지기 어렵게 됐다. 시위가 벌어져도 당국이 테러로 규정하면 온라인에 소식을 전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테러법은 법률의 내용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반체제인사나 소수민족 독립운동을 탄압하는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사태도 예상된다. 실제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중국의 반테러법안이 시민의 기본권과 기업의 권리를 제약할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3월 “중국이 반테러법 제정과정에서 미국의 정보통신기업들에 암호키와 비밀코드를 넘기라고 했다”고 밝히며 중국 당국을 비난한 바 있다.

 

캐나다 반테러법 (Anti-terrorism Act)

캐나다는 지난해 6월 반테러법(Anti-terrorism Act)을 제정했다. 2014년 10월 국회의사당을 포함해 수도 오타와 도심 3곳에서 무장 괴한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한 뒤 캐나다 정부가 조치한 것이다.

이 법은 캐나다 보안정보국(CSIS)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켰으며, 연방정부와 산하기관들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폭넓게 공유할 수 있게 했다. 또 테러를 선동하는 매체와 테러 선동 웹사이트를 압수·폐쇄할 수 있는 권한을 법원에 부여했다. 경찰은 테러용의자를 즉각 구금할 수 있으며 외국인의 입국도 임의로 거부할 수 있다.

 

프랑스 일상안전에 관한 법(Loi de la Securite Quotidienne)

프랑스 정부는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하자 자국의 안전 강화 차원에서 신속히 반테러법을 제정해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특수부대에 사법권을 부여하고 영장 없이 용의자를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민간회사에 대한 수사의 범위와 권한도 확대됐다. 인터넷 사업자들은 고객 정보를 1년간 의무 보존하고, 수사기관은 법원의 허가 없이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했다. 운송업자들도 화물 및 승객에 관한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프랑스 테러방지법은 테러를 막지 못했다. 지난해 1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를 겨냥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발생,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11월의 파리 테러 당시에는 무고한 시민 130명이 희생됐다. 이에 프랑스 하원은 테러 방지 목적에 한정해 국가정보기관이 판사의 사전승인 없이도 테러 용의자를 감시하고 통신·이메일 등을 감청할 수 있게끔 한층 강화된 반테러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인권단체와 프랑스 법조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국제앰네스티는 “국가비상사태와 정부의 감시 권한을 확대하는 법안은 시민의 자유를 과도하고 부적절하게 제한할 수 있다”라며 프랑스 정부를 비판했다.

피에르 올리비에 쉬르 프랑스 변호사협회 회장은 “테러로부터 프랑스를 보호하는 내용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테러 전문 판사 마르크 트레비디크 판사도 “통상적인 사법적 감시가 빠진 위험한 법안”이라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