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의 화약고 ‘브렉시트’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는 유럽연합(EU)의 벽에 커다란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를 두고 오는 6월 23일 국민투표 시행을 결정한 것.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인 인디펜던트와 여론조사기관 ORB 인터내셔널이 영국인 20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브렉시트 찬성 지지율이 52%로 반대(48%)보다 높게 나왔다. 유고브 조사에선 브렉시트 반대가 37%, 찬성이 38%로 초박빙 양상을 보였다. 이처럼 찬반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브렉시트 불확실성 확대로 파운드화 약세도 이어지고 있다. 브렉시트 현실화 우려로 파운드화가 G10 통화 중 가장 큰 폭의 약세를 기록하고 있는 것. 지난해 12월31일부터 올해 1월29일까지 -3.3%를 기록했다. 지난 2월1일 종가기준으로 지난해 11월말과 견줘 4.3% 절하됐다. 국민투표 날짜를 결정한 이후 파운드화 가치는 1.40달러를 하회하는 등 2009년 7월 이후 7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찬성 여론을 약화시키기 위해 지난 19일 영국에만 특별 지위를 보장하는 EU개혁안을 끌어냈다.

유럽의 미래를 좌우할 브렉시트 주장은 왜 일어났으며, 브렉시트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어느 정도일까.
 

캐머런의 재선 공약 ‘EU 탈퇴 국민투표’

캐머런 총리는 2013년 초 EU 조약의 부분 개정을 앞두고 ‘2015년 총선 승리시 2017년까지 EU 탈퇴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선거 결과 캐머런이 몸담고 있는 보수당이 하원 전체 650석 가운데 331석을 차지해 과반 의석 및 단독 정부를 수립했다.

‘브렉시트’ 공약은 EU의 정치적 통합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데 반대해온 영국의 전통적 입장이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실제로 보수당은 내각 구성 후 20일 만인 2015년 5월 28일 ‘EU 국민투표법(EU Referendum Bill)’을 제출했다.

이어 2015년 6월 캐머런 총리는 EU 정상회의에서 ▲영국의 주권 재확립 ▲국익 차원에서 유로존 회원국과의 공정성 확립 ▲유럽 내 회원국간 이민 제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즉각적 조치 등 협상 과제를 제시하며 EU를 압박했다.

그 결과물이 지난 19일 끌어낸 EU개혁안이다. 협상 후 캐머런 총리는 “영국이 EU에 남을 수 있도록 영혼을 다 바쳐 국민을 설득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에 호의적이며, EU의 시장통합에 찬성 입장이다. 특히 EU 역내 단일시장 및 제3국과의 FTA에도 매우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반면 정치통합에는 부정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1973년 이래 유럽통합에 대한 지지도는 영국이 항상 제일 낮았다.

브렉시트가 대두된 이유는 국내 정치적 상황 및 EU와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국내 측면으론 영국 국민의 정서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유럽회의론(Euroscepticism)’을 들 수 있다.

‘유럽회의론’의 근저에는 유럽대륙에 대한 경계심이 내재돼 있다. 섬나라인 영국은 유럽대륙을 포용하기보다 불신해왔다. 영국이 독일을 경계하는 이유도 패권 야욕을 드러낸 전력 때문이다. 독일은 유럽연합을 더 강한 정치공동체로 만들려고 하지만 영국이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브렉시트 찬반 양론의 근거

캐머런 총리의 2013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제안은 향후 영국 내 유럽회의론 정서가 약화될 것으로 예상해 내건 ‘비장의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EU예산 분담금 부담 증가, EU차원에서의 규제 및 통합이 더욱 강화되자 ‘유럽회의론’ 정서는 강해졌다. 나아가 반EU를 앞세운 영국독립당까지 부상하는 형국이 됐다.

반EU정서가 강화된 이유 중 하나는 이민 문제다. EU여론조사기관인 ‘유로바로미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다수 EU 회원국의 여론은 실업, 경제상황 등 경제문제를 가장 시급한 이슈로 지적하는 반면, 영국 여론은 이민문제를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지적했다.

영국은 독일에 이어 EU회원국 중 두 번째로 역내이민 유입이 많은 국가다. 이민 유입이 급증한 시기는 2004년, 2014년 두 차례 있었다.

2004년은 중동부 유럽국가가 EU에 신규가입한 시기다. 신규가입국에 대한 노동시장 개방으로 영국은 2003년 15만명에서 2004년 87만명으로 외국인근로자가 폭증했다. 2014년에는 역내이민(EU 회원국)과 역외이민(비EU 회원국)에서 지속적으로 이민자가 유입됐다.

영국으로의 이주 동기는 구직 등 일자리와 관련된 비중이 가장 크다. 영국 국민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줄어들자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도 복지지출 및 고용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출했다. 이에 캐머런 총리는 역내 노동이민자를 대상으로 복지혜택을 축소하는 등 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시도는 노동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EU 조약에 위배된다. 이 와중에 중동에서 난민이 몰려들자 EU와 갈등이 심화됐다. 영국정부가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 통제를 검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독일은 이런 영국을 못마땅해 한다. 독일 빌트지는 “독일은 난민 수용 수준이 인구 100만 명당 905명인데 반해 영국은 114명으로 EU 평균치의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영국 보수당 내에선 EU 탈퇴 주장이 적지 않다. 내각에서는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등 장관 6명이 탈퇴 지지를 밝혔다. 여기에다 차기 총리감으로 꼽히는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이 탈퇴 지지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탈퇴론이 힘을 받고 있다.

탈퇴 주장의 근거는 EU 규제 때문에 영국 경제 발전이 어렵다는 것. 탈퇴론자들은 EU 규제로 인해 영국이 부담하는 비용이 한해 333억 파운드(약 57조 원)에 달한다고 지적한다. EU 이사회에서 영국 투표권이 8%에 불과하다 보니 독일과 프랑스 주도하에 주요 결정이 이뤄지는 점도 불만이다. EU 회원국의 경제난과 난민 사태 대응 부족 역시 EU 탈퇴 주장으로 내세운 이유다. 경제난으로 동유럽 노동자들이 대거 영국으로 몰리면서 일자리와 복지 혜택이 줄어들고, EU의 난민 통제 실패로 난민 위기가 영국으로까지 번진다는 것이다.
 

반면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여론도 상당하다. EU 잔류가 정치·경제적으로 영국에 이익이라는 판단에서다. 구체적으로 ▲영국 수출 대상의 절반이 EU라는 점, ▲EU가 50여 개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의 이점을 잃게 된다는 점 ▲금융 중심국가로서의 지위가 박탈될 수 있다는 점 등이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이유다. EU 탈퇴는 테러 등 영국 안보에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EU 탈퇴 시 예상되는 피해

브렉시트가 현실화 되면 영국 경제는 1.13%~3.09%의 복지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EU 탈퇴 시 영국 경제는 재정부담 감소에 따른 이익은 미미한 반면 EU 역내 비관세장벽 감소로 수출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됐다.

독일 연구기관 베텔스만은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은 2030년까지 GDP(2014년 기준)의 14%인 최대 3천130억 유로(약 427조 4천억 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은 EU 탈퇴 시 더 이상 EU 조약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광범위한 분야에서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하며, 대외관계(통상, 국제기구, 국제협약)에 있어서도 대대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

금융허브로서의 지위가 약해질 가능성도 있다. 영국 금융권의 EU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제약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영국에 위치한 다국적 은행들이 EU와의 접근성을 고려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옮겨 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른 손실도 만만찮아 영국 경제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

브렉시트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연호 연세대 교수는 브렉시트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이유는 영국이 유럽 국가 중 한국의 최대 수입국이기 때문. 한국의 대 EU 수출 중 영국의 비중은 2015년 기준 15.4%다. 브렉시트로 영국 경제가 침체를 겪게 된다면, 수출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영국은 네덜란드와 함께 한국기업의 최대 투자대상국이다. 이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라고 강조한다. 2015년 말 현재 영국 내 한국 법인의 수는 334개(전체 유럽의 12%), 투자금액(누계기준)은 1030억 달러(전체 유럽의 20%)에 달한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영국에 거점을 둔 한국 기업들은 유럽 시장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된다는 얘기다.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도 높아질 수 있다. 국내에 투자한 영국 자본의 유출 가능성 때문이다. 지난 1월말 현재 국내에 투자된 외국인 자본 중 영국의 비중은 주식시장 8%(2위, 32.3조원), 채권시장 1.4%(1.4조원)에 달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브렉시트로 국제금융시장 혼란이 지속되면 우리 경제 성장률이 1.7~2.7% 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주식시장은 최대 26.5% 급락하고 해외자본은 14조원 가량 이탈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성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브렉시트는 단순히 금융이나 무역을 넘어 EU 시장 전반의 변화로 확대가 예상되는 만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 29일 '더 뉴 데이'(The New Day)의 창간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브렉시트 반대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영국은 EU를 떠나면 '10년간의 불확실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영국 국민들은 ‘위대한 영국과 거대한 미지수’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의 호소가 영국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캐머런이 한 손엔 브렉시트를, 다른 손엔 ‘선물 받을 보자기’를 들고 EU 탈퇴 으름장을 놓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선물 보자기’는 EU와의 협약 개정을 통한 자국 이익 추구다. 캐머런의 이런 정치 스타일은 윈스턴 처칠과 비교된다. 처칠은 영국 총리 시절 유럽통합을 부르짖었다. 194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처칠은 “전후의 유럽은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 유럽 각국이 협력해 합중국을 건설하고 상호 발전을 이루는 번영의 장으로 나아가자”라고 연설했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영국인 중에는 “처칠의 정신과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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