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전가의 보도’를 꺼냈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상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것. 김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에 더민주 의원 107명,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 국민의당 의원 10명, 정의당 의원 2명 등 총 120명의 의원이 서명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의무화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감사위원 선임절차 분리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다. <월요신문>은 개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을 항목별로 심층 보도한다. 세 번째 순서는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다.

1998년 우리나라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상장회사에 대해 의무적으로 사외이사를 두도록 규정했다. 첫째,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함으로써 회사 대주주의 전횡을 막아 회사 운영이 그릇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인 회사 경영상태를 감시하고 조언하는 사외이사는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을 투명하고 선진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사외이사제는 제대로 운용되고 있을까. KDI의 2010~2012년 100개 기업 이사회 현황 분석에 따르면 이사회 안건에 대해 사외이사가 한 명이라도 반대한 경우는 9101개 안건 중 33건(0.4%)에 불과했다. 2015년도 크게 다르지 않다. CEO스코어의 30대그룹 소속 180개 계열사 이사회 의결 분석 결과, 사외이사 안건 찬성율은 99.6%였다. 특히 SK, LG 등 18개 그룹 이사들은 모든 사안에 100% 찬성했다.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을 한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조선해양이다. 더불어민주당 김기식 전 의원에 따르면 2008년 이후 대우조선해양 신규 사외이사 18명 가운데 12명은 정권과 관련된 ‘정피아’, ‘관피아’였다. 이중 정피아에 해당하는 사외이사는 안세영 뉴라이트 정책위원장, 김영 17대 대선 한나라당 부산시당 대선 선거대책 본부 고문, 장득상 힘찬개발 대표이사, 김영일 글로벌코리아 포럼 사무총장,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고위 공직자 출신 사외이사는 이정수 전 대검 차장검사, 한경택 전 신용보증기금 감사였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우조선해양에 임명된 사외이사는 7명 중 5명이다. 이종구 전 국회의원(17,18대), 조전혁 전 국회의원(18대), 유정복 인천시장 보좌관 출신 이영배, 신광식 제18대 대선 국민행복캠프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 위원, 고상곤 자유총연맹이사였다.


문제는 이들이 조선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대우조선해양이 분식회계를 일삼고 방만 경영으로 부실해질 때까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의 소액주주들은 지난 14일 전·현직 임직원, 회계법인과 함께 5명의 사외이사를 상대로 수십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우조선 소액주주들이 낸 소송에 사외이사가 포함된 것은 처음이다.


이는 대우조선해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재벌 오너가 대주주로 있는 대기업의 사외이사도 마찬가지다. 30대 그룹 올해 주주총회에서 재신임된 사외이사 중 6년 넘게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는 사외이사는 60%가 넘는다.


사외이사의 출신도 문제다. 대기업집단 사외이사 3명 가운데 1명은 관료출신이라는 분석결과가 나왔기 때문. 경제개혁연구소가 조사한 2006~2015년 사외이사 현황에 따르면 231개 기업집단 292개 상장사의 사외이사와 감사는 총 4838명으로 이 중 관료 출신(판·검사 포함) 사외이사는 전체의 32.49%(1572명)로 가장 높았다. 이밖에 학계와 재계 출신이 각각 30.3%, 25.75%로 뒤를 이었고 법조계, 언론, 회계사 등 전문직 출신 사외이사의 비중은 5%에 못 미쳤다.


대표적인 예가 홍만표 변호사다. 홍 변호사는 2011년 8월 검찰을 떠난 이후 대기업 여러 곳에서 사외이사를 맡아 억대의 수입을 올렸다.


관료출신 사외이사 중 경제부처 관련부처 출신은 698명에 달했다. 독립적인 위상으로 기업경영을 감시하도록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사실상 기업의 대정부 로비를 위해 오용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를 바로 잡고자 정치권에서는 꾸준히 사외이사의 독립권 강화를 위한 입법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는 사외이사의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해 사외이사가 경영진과 밀착 소지를 원천적으로 방지했다. 아울러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한 사외이사 선출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상법개정안에 담았다. 다음은 김종인 대표가 발의한 상법개정안 중 사외이사 관련 내용이다. 

사외이사의 경우 최대주주 및 그의 특수관계인은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의 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하여 보다 중립적인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며, 상장회사 및 계열회사의 임직원이었던 자 등으로서 이사회의 독립·감시기능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한 결격 요건을 확대하고, 우리사주조합 및 소액주주들이 추천하는 사외이사 각 1인 또는 복수의 후보자를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추천할 수 있게 하며,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우리사주조합 및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후보자 각 1인은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임하여야 함

시민단체, 학계는 사외이사의 독립성 강화가 꼭 필요한 조치임을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는 “훌륭한 자격을 갖추고 독립성을 갖춘 사외이사를 선임해 이들에게 풍부한 경영정보를 제공해주고 폭넓은 지원을 통해 합리적 경영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주주와 회사를 보호하고 사외이사제도를 발전시키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사외이사는 대주주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하는데, 금융위 등의 감독기관 출신 인사나 산업은행 등의 정책금융기관 출신 인사들이 구조조정 대상 부실기업의 사외이사나 감사위원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 사외이사 자격요건 강화 등 제도 개선이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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