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형인 김정철(왼쪽)이 런던 에릭클랩튼 공연장을 방문했을 당시 포착된 태영호 공사 모습(오른쪽).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태영호 공사의 한국 입국 사실이 밝혀진 후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다. 태영호 공사 가족이 빨치산 출신이라거나 김정은 통치자금을 들고 망명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사실인양 기사화되고 있다.

반면 외신의 반응은 차분하다. 태 공사의 한국행을 놓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은 “10여 년 동안 외교무대에서 활동했던 태 공사의 전력과 위치를 감안할 때 상당한 북한 내부 정보를 갖고 있을 것”라는 정도로만 보도하고 있다. 태 공사가 김정은 통치자금을 갖고 한국으로 튀었다는 식의 보도를 한 외신은 한 곳도 없다. 주요 외신 중에는 태 공사가 속빈 강정일 가능성을 제기한 언론사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태 공사 망명을 다루며 “외교관으로써 태 공사는 정책을 세우는 역할을 맡지 않았을 수 있다. 이는 최고위층 망명자인 황장엽과는 다르다. 황장엽은 김일성 주변에서 머물며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이론화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그에 비해 태 공사는 주영대사 출신의 6자 회담 수석대표 리영호 북한 외무상과 일한 정도”라고 언급했다.

시드니대 교수이자 북한 전문가 저스틴 헤이스팅스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태 공사가 북한의 해외자금 조성 활동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을 수 있다”라고 전제한 뒤 “영국에서 무기 판매는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 무기 판매를 통한 자금 조성은 아프리카와 중동에 있는 외교관들에게 해당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헤이스팅스는 “북한의 해외 전초기지들은 다양한 작전을 구사하기 위해 서로 상당히 분리돼 있는 경향이 있다”며 “태 공사가 영국 주재 대사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헤이스팅스는 “태 공사가 어떻게 자금 조성이 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면 놀랄 일이다. 태 공사가 장부를 갖고 있을지 의문스럽다”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일부 언론에서 “태 공사가 대사관이 관리하던 580만 달러(64억여 원)을 갖고 탈북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헤이스팅스 교수의 이런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10년 넘게 태 공사를 알고 지낸 케임브리지대 아시아 선임연구원 존 닐슨-라이트도 WSJ과의 인터뷰에서 “태 공사는 정치가가 아니라 외교관이다. 태 공사가 주요 의사 결정과정에서 관여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태 공사의 한국행 이면에 한국 정보 당국이 개입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북한 정권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김명철 조미평화센터 소장은 18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보기관의 전형적인 작업으로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책략의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지난 4월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의 사례와 매우 비슷한 사건”이라면서 “한국 정부가 돈 또는 여자들로 전 세계 북한 외교관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아직 태영호 공사 망명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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