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12일 밤 경주에서 일어난 규모 5.8의 지진으로 한국 사회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일본의 선진화된 재난대응 시스템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본은 세계에서 지진으로 인한 재난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이고 신속한 재난대응 시스템으로 피해를 최소화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일본이 처음부터 재난대응 선진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95년 1월 17일에 발생한 규모 7.3의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 당시 일본에서는 6,43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중경상을 입은 환자 수도 4만3,792명에 달했다. 피해 총액도 최대 13조엔에 달해 당시 우리 정부의 1년 예산(54조8243억원)의 2배가 넘는 대형 참사였다. 이처럼 피해 규모가 커진 데는 지진의 파괴력이 큰 점도 있었지만 체계적인 재난대응 시스템이 부재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일례로 지진이 발생한 첫날 112명의 의사가 근무하던 고베대 부속병원에는 부상자 336명이 들어온 반면 7명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던 인근의 미야고베병원에는 부상자 1000여명이 일시에 몰려와 의사 1인 당 환자 150명을 진료해야 하는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신ㆍ아와지 대지진은 일본의 DMAT(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 재난의료지원단)시스템이 탄생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DMAT는 지진 등 재난 발생 시 전국 병원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재난대응 시스템이다. DMAT 본부가 있는 국제재난의료센터는 일본 후생성 산하 기관으로 평상시에는 일반적인 종합병원의 역할을 하지만 재난이 발생하면 DMAT 파견을 관리하는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 DMAT 요원들은 국가사고관리시스템(NIMS, National Incident Management System)에 기초해 지시와 통제, 안전, 정보전달, 평가, 부상자 분류, 치료, 이송 단계에 따라 체계적으로 움직이도록 교육받는다.

일본 후생성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일본 내에는 418개 의료기관이 DMAT 협력병원으로 지정돼 있으며 986개 DMAT에 총 6,134명이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의사는 2,025명이고 간호사는 2,500명, 약사나 방사선사, 행정직 등 물류관리자가 1,609명이다. DMAT 요원들은 평상시에는 각자 속한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비상시 호출돼 재난 지역에 파견된다.

재난이 발생하면 우선 지역 거점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재난 지역에 파견해 환자를 치료하고 이송하도록 한다. 부상자를 재난 지역에서 다 소화하지 못하면 인근 지역 병원에서 DMAT를 파견해 거점병원을 지원하고 환자 치료와 이송을 돕는다. 하지만 대지진 등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거점병원과 인근 지역 병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를 일본 전역으로 이송한다. 이 과정에서 이동이 힘든 노인 등을 치료하기 위한 임시진료소와 이송기지를 만들어 환자 치료 및 이송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한다.  

일본 DMAT가 재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데에는 DMAT 활동 사항 뿐 아니라 치료 가능한 환자 수, 치료받은 환자 수 등 병원 관리에 필요한 정보까지 공유하는 응급의료정보시스템(EMIS, Emergency Medical Information System)이 탄탄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응급의료정보시스템은 병원 간 연락시스템으로 병원의 상태와 환자 수, 현지 상태 등을 전달하도록 구성돼 있다. 시스템의 응급 정보 입력 메뉴에는 상하수도 및 전력 공급 상태, 빌딩의 손상 정도, 병원을 찾는 환자 수 등을 입력하게 돼 있는데 이 3개 항목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환자를 받기 힘든 병원으로 분류된다. 기본적인 항목을 체크한 후에는 이송이 필요한 환자 수나 상태 등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입력하도록 돼 있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당 지역 응급관리센터에서 피해가 심한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피해가 적은 병원으로 이송하거나 필요한 물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DMAT사무국 요시타카 박사는 “일본의 응급재난의료시스템은 한신·아와지 대지진 후 만들어졌다”며 “초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의료기관 사이의 연락시스템인 EMIS를 만들어 병원의 상태와 환자 수, 현지 상태 등을 전달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도 지난 2000년 국립중앙의료원(NMC)을 중앙응급의료센터로 지정해 재난 발생 시 응급의료지원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하는 한편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중심으로 재난거점병원 및 재난의료지원팀을 운영하고 있다. 2015년엔 위기대응단 창설 및 KDRT(대한민국 긴급 구호대) 인력 운용 등을 통해 조직적인 대응체계 구축 및 전문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등 재난대응 선진국에 비해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의료 지원을 선진화하려면 특별히 훈련된 인력과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고 국제 기준에 맞는 의료 장비 두 가지가 준비돼야 한다”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다”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이어 “국내 재난 사태에 대비하는 재난의료지원팀이 전국적으로 65개 꾸려져 있으나 아직 체계적이고 통합적 관리를 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재난대응 시스템의 선진화를 위한 공적 투자와 국가적 지원이 전면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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