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27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27일 기자회견이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 고위급 탈북민의 기자회견은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기자회견 이후 근 20년 만이다.

태 전 공사는 먼저 탈북 이유로 통일을 언급했다. 그는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여년 지났지만 하루 빨리 제 세대에 나라 통일하는 걸 평생 숙원으로 생각한다. 빨리 통일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지리적으로 제일 가깝고 같은 민족이고 언어, 피가 통하는 대한민국에 와서 통일을 위한 투쟁 벌이는 게 나라 통일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활동을 나서는 데에 신변 걱정이 없냐는 질문에는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저는 김정은 정권 빨리 붕괴시키고 우리 민족을 핵참화에서 구원하겠다는 생각에 공개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북에 두고 온 가족과 피해 입은 동료 생각하면 마음 아프다. 방구석에 앉아서 눈물이나 흘리고 해서 도움될 거 없다. 제가 싸울 때만이 통일의 아침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딸을 북한에 두고 왔다는 일부 보도가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그는 “김정은 정권은 해외에 나간 주재원의 자식 한명을 인질로 잡아둔다. 그러나 저는 천만다행스럽게도 제 자식들을 다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제가 어떤 경로와 과정 거쳐서 제 자식들을 데려 올 수 있었는지는 현재 북한에 계시는 여러분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라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핵개발 주기가 급격하게 짧아진 이유에 대해 “2017년 말 핵개발 완성 시간표”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7차 당 대회 이후 김정은은 가장 빠른 시일 내 핵을 완성할 것을 당 정책으로 명했다. 이후 적기를 한국 대선 진행되고 미 대선 후 정권 인수 과정인 2016~2017년 말로 봤다. 정치적 국내 일정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북한 핵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는 물리적,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못할 거라는 타산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이어 “북한은 한국에서 대선 끝나고 미국에서 새로운 대북 정책 팀이 꾸려진다면 필경 새롭게 시도할 것으로 간주한다. 이럴 때 북한은 빨리 핵개발 완성해서 핵보유국 지위에서 미국 한국과 대화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는 한미가 유지해온 선 비핵화 후 대화 도식을 깨고, 대북제재 해제, 한미합동군사훈련 해제 등을 보장받고 핵보유국가로 인정받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한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현 대북 정책에 상당히 논쟁이 많은 것을 봤다. 하지만 김정은의 핵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 마느냐 문제는 인센티브의 양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은이 있는 한 절대로 북한은 핵무기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조 달러, 10조 달러 준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외교관들의 실상도 알렸다. 그는 “북한 외교관들이 아침에 일어나 처음 컴퓨터를 켜고 보는 게 연합뉴스다. 대외 활동을 하려면 사전 정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연합뉴스 북한란을 통해 하루동안 한국, 해외 언론이 북한에 대해 뭘 썼다는 것을 파악한다. 스마트 폰에 연합뉴스 앱을 설치해 다 본다. 제가 오늘 말하는 것도 거의 그대로 북한 외교관, 해외에 있는 사람들은 즉시 다 본다”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북한에서 불고 있는 한국TV 열풍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한국 TV에서 나오는 이만갑, 모란봉클럽. 몰라수다 북한수다. 탈북민들이 활동하는 건 100% 다 본다. 가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탈북민 생활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북한에서 1순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사람치고 한국 영화, 드라마 못 본 사람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다. 공부한 사람들은 역사물 좋아한다. 불멸의 이순신,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일반 주민들은 겨울 연가, 가을 동화, 풀 하우스 등등. 이를 차단하는 조치가 간단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태 전 공사는 “북한 애들은 너무 남한 드라마 많이 봐서 말투도 바뀌었다. 자기야 오빠야, 할꼬야? ㅋㅋㅋ, 이런 거 북한에는 전혀 없던 표현들이다. 선전원이 잡아서 텍스트 딱 보고 한국 말투 있으면 바로 ´가자´고 한다. 근데 이게 또 돈벌이가 됐다. 전화 뺏기면 20~30달러. 살려주십쇼 하면 보위부원들이 다 지우라고 해서 돌려준다. 새로운 거 보려고 하고 없는 것을 추구하는 속성은 막을 수 없다. 북한이 주민 통제 막지 못하는 건 2가지다. 마약과 한류다”라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개성공단을 처음 시작할 때 김정일이나 북한 당국 고충이 상당히 컸다. 북은 공단을 통해 중공업과 화학공업 등 덩치 큰 공업들이 들어올 거라 생각했고 한강의 기적 같은 걸 기대해 시작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중화학공업은 안 들어오고 소비재공업만 들어와 우리가 한국에 당한 거 아니냐는 내적 논리 생겼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도 밝혔다. “현 시점에서 개성공단을 어떻게 하나고 물어보면,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했는데 만일 북한의 핵질주를 멈추기 위해 남한 정부가 폐쇄 선전 조치 안 취했다면 다른 나라의 제재가 따라왔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다”고 찬성 입장을 밝혔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제재의 현주소도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가장 큰 외화벌이 원천이 보험과 해운업이고 북한 재보험 자금의 95%가 영국에서 들어가는데 대북제재로 런던 소재 북한의 국영보험사(조선민족보험총회사·KNIC)가 쫓겨났다”며 “한 해 수천만 달러씩 빨아들였던 보험 자금줄이 막혔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주영 북한대사관 직원 5명 가운데 2명이 국가해사감독총국 소속인데 이들은 외교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넉넉한 생활을 한다”며 “올해 초부터 이들의 현지 생활 유지비가 나오지 않아 집주인이 집을 내놓으라고 하고 전화도 끊겠다고 하는 등 압박했다”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압박과 관련해서도 "지금 북한과 북한 외교 전반을 가장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인권문제"라며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3월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은 처음으로 공식 표 대결을 포기했다. 북한이 인권문제에서 표를 포기한 것은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한 인권공세의 커다란 승리"라고 했다. 그는 북한 스스로가 국제사회를 상대로 인권 문제의 부당성을 제기해도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최근 유엔총회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한 것과 관련, 향후 김정은의 이름이 결의안에 담기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주민들은 ICC를 모르지만, 김정은이 재판에 넘겨진다는 소문이 북한 내부에 들어가면 그것은 곧 김정은이 범죄자라는 것을 의미하고 김정은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직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이라는 세 글자가 유엔 결의안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태 전 공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직접 본 소회에 대해서는 “사람이 살아가고 나라 운영하는 데서 시스템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하구나라는 건 한국 정치 정세 보면서 느꼈다. TV 보면 당장 나라가 끝날 거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평온하게 지내고 아무 일 없는 거처럼 사회가 가동된다”면서 “세계적으로 100만명이 모였다 흩어질 때 경찰 연행이 없고 시위 후 청소하는 장면 보고 대단한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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