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월요신문 편집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귀국했다.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반 전 총장이 내놓은 일성은

‘포용의 정치’와 ‘정치교체’였다. 반 전 총장은 ‘세대 교체’라는 표현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정치 교체’다. 이 표현은 고심 끝에 만들어낸 흔적이 엿보인다. 우리 국민들이 정치에 신물이 날 정도로 불신감이 높다는 점을 의식한 것일까. 흥미로운 점은 이 표현의 저작권자가 이미 있다는 사실이다. 2012년 12월 8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정권교체의 수준을 넘는 정치교체와 시대 교체로 새로운 시대,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습니다“

반 전 총장이 저작권자의 승인을 받고 그런 표현을 썼는지, 모르고 썼는지 따지는 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 국민들은 이런 수사적 표현보다 실천에 더 목말라한다는 점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들은 백마디 립서비스보다 행동하는 리더십을 고대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당시 미용사를 부르고 경호실 출동 준비를 기다리느라 ‘골든 타임’을 허비한 리더십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반 전 총장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어깨엔 빛나는 훈장이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받은 유엔사무총장이라는 훈장이다. 그러나 그 훈장이 국민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반 전 총장은 귀국하기 전부터 “유엔사무총장으로 쌓은 경험을 조국을 위해 쓰겠다”고 강조해왔다. 그 발언은 언뜻 듣기에는 그럴듯 하지만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유엔사무총장으로 쌓은 경험은 전 세계 지구촌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지 특정 국가를 위해 쓰는 건 바람직하기 않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이 대통령직에 도전하려면 먼저 훈장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어떻게 해소하고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인지 명쾌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만약 반 전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의 이름으로’ 대통령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혹자들은 반기문과 코피아난의 리더십을 종종 비교한다. 코피 아난은 행동의 리더십을 보였지만 반기문은 ‘수사의 달인’이라는 평이 많았다. 그가 유엔 사무총장 재임시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얻은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표적인 예가 그를 가리켜 ▲기름 장어,▲우려 사무총장(concern man) ▲'nowhere man(어디에도 없는 사람)'으로 부른 것이다. 그는 왜 어디에도 없었을까.

기름장어라는 표현은 별명을 붙인 쪽의 의도가 있을 수 있어 편파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지만 'nowhere man‘은 차원이 다르다. 이 별명은 서방언론에서 반 전 총장에게 붙여준 것이다. 유엔사무총장으로 10년을 일하는 동안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

그 별명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반 전 총장이 ‘온 몸을 불살라’ 대한민국을 리모델링하고 싶다면 지금까지 보인 것과 다른 차원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 리더십은 훈장부터 떼는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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