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8군명예사령관 임명식에서 백선엽 장군/출처=뉴시스>

[월요신문=김은수 기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는 말에 경종을 울린 부자(父子)가 있다. 주인공은 백선엽 전 장군과 그의 장남 백남혁이다. 부자간의 피도 눈물도 없는 각축전은 다름아닌 차명 부동산 소유권을 놓고 치열하게 전개됐다.

부동산 덕흥빌딩의 현재 자산 가치

아버지와 아들이 천륜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매력적인 건물은 다름아닌 서울 강남의 강남역 5번 출구 앞에 있는 덕흥빌딩이다. 이 빌딩은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강남대로 변에서도 단연 시선을 끈다. 무려 지하5층, 지상 16층의 대형빌딩이다. 

자세히 알아보면 덕흥빌딩의 가치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대지 258평, 건평이 3443평에 달한다. 건물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지난 1992년 10월 23일 건축허가를 받아 같은 해 11월 28일 착공해 12월에 준공했다. 94년 12월 1일 사용승인을 받았다. 

서울 부동산정보조회 시스템에서 개별공시지가를 열람해 본 결과 2017년 5월 31일자로 책정된 덕흥빌딩의 공시지가는 4120만원이며 제곱미터로 평수를 환산해 공시지가를 적용시켜 보면 전체 땅값만 351억 1천여만원에 이른다. 

공시지가와 실거래가의 차이가 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보통 실거래가가 공시지가의 2~3배정도라고 하니 덕흥빌딩의 실거래 가치는 상상 이상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수준을 대략적으로 가늠해보자면 이학수 전 삼성부회장이 소유한 선릉역 인근의 L&B 타워를 덕흥빌딩과 비교해보면 된다. 이학수 빌딩의 공시지가는 3610만원, 대지가 187평으로 덕흥빌딩에 비해 대지규모가 4분의 3밖에 못미친다. 이 빌딩의 시세는 2천억원으로 밝혀졌으며 곧 덕흥빌딩의 시세는 최소 2000억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백의 자기고백, "내 차명재산이요"

현재 등기부등본과 폐쇄 등기부등본을 조회해본 결과 덕흥빌딩의 현재 소유자는 백선엽 장군의 아들 백남혁씨다. 공식적으로 1990년 4월 28일 아버지 백선엽 장군으로부터의 증여로 장남 남혁씨 소유의 건물이 됐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등기부등본에 기재된 2007년 4월 11일 갑자기 부동산처분 금지가처분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 명령은 건물 소유자에게 건물에 대한 소유권을 제약하는 효력을 발휘한다. 

사건 번호는 '서울중앙지법 2007 카합 1055'이며 본지가 사건검색 시스템을 통해 조회해본 결과 백장군의 장녀인 백남희, 차녀 백남순, 차남 백남홍 등 동생 3명이 큰오빠 백남혁을 상대로 제기한 것으로 나왔다. 소송의 결과로 가처분결정이 내려졌고 백남혁씨는 부동산의 매매, 증여, 전세권, 저당권, 임차권 등 해당 건물의 재산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동생 3남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모두 215억의 채권이 있다며 이 건물을 가압류하고 현금 3억원과 보증보험채권 19억원 가량을 공탁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남매들끼리 숱하게 벌이는 유류분 전쟁의 신호탄이 조금 일찍 터진것일까. 예측은 빗나갔다. 3남매가 부동산처분 금지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이틀 뒤인 2007년 4월 13일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 이전등기청구'라는 본인 소송을 제기했다.

진정명의회복이란 등기가 실체관계와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 그 등기를 실체관계와 부합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덕흥빌딩의 경우 동생 3남매가 현재 소유주인 장남 남혁씨의 소유권 행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실제 주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때아닌 자기고백이 터져 나오는데 3남매가 주장하는 이 부동산의 실제 주인은 자신의 아버지인 백선엽 장군이라는 것. 백선엽 장군은 자신의 입으로 차명 재산으로 부를 축적해왔음을 자백한 꼴이 된 셈이다.

치사하게 줬던걸 뺏느냐, 부자간 피도 눈물도 없는 소송분쟁 

서울지방법원은 2008년 8월 26일 원고인 3남매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다. 졸지에 장남 남혁씨는 2천억대의 자산을 눈앞에서 잃게 됐다. 그에게 아버지는 동생들을 앞세워 줬던걸 뺏는 남보다도 못한 사람이 돼버린 셈이다. 결국 장남 남혁씨는 같은년도 10월 8일 판결에 불복한다는 의미로 항소했고 재판부는 2010년 1월 13일 3남매에게 일부만 재산권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려졌다. 

장남 남혁씨의 재산권 일부가 인정된 것이다. 스코어는 일대일 무승부 상황이 됐다. 그러나 장남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배신감과 상처가 컸던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10년 2월 26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부자간의 싸움이 권좌가 아니라 덕흥빌딩을 놓고 벌어진 것이다. 남혁씨는 백 장군 측의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완강히 주장했지만 법원측은 6월 10일 상고대상이 아니라고 판단,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재판을 할 필요도 없이 재판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부자간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 

대법원의 판결로 백장군의 진정명의가 인정되자 2010년 7월 6일 덕흥빌딩 지분의 절반이 백장군의 부인 노인숙씨의 소유라는 사실이 등기부등본에 기재됐다. 이 권리의 대위자는 3남매에게로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줬던걸 뺏어왔다. 일부이긴 해도 큰 소득이었다. 3남매는 2010년 8월 12일 장남 남혁씨를 상대로 권리행사 최고 및 담보취소 가처분신청을 했고, 9월 15일 가처분 명령을 받아냈다. 지분 절반에 대한 권리행사를 요구한 것이며, 이는 지분을 제 3자에게 팔아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그 뒤 2012년 5월15일 백장군의 부인 노인숙씨는 덕흥빌딩 절반의 지분을 장남 남혁씨에게 매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남 남혁씨가 노인숙씨에게 구체적으로 얼마를 건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혁씨가 우리은행에서 이 빌딩을 담보로 444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된 것으로 보아 그 대가는 4백억원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정축재, 뿌리는 선인학원 

이쯤되면 현재 시세 약 2천억원에 달하는 자산형성과정이 궁금해진다. 이 건물이 자신의 차명 재산임을 주장한 백선엽 장군은 보수쪽에서는 '6.25 전쟁영웅'으로 통한다. 그의 전쟁 썰 역시 널리 알려져있는데 유명한 다부동 전투에서 후퇴하는 한국군들을 향해 "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순 없다"며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실제로 그는 육군참모총장과 연합참모회의의장을 거쳐 교통부장관 자리에 올랐다. 

이런 그를 놓고 일각에서는 군인과 공직자 생활을 거치며 전쟁 영웅으로서 조국에 헌신한 그가 단지 나라에서 받은 녹으로 2천억의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는 시각이다. 

모든 것은 정권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 백선엽 장군은 만주군 출신으로 남북전쟁 이전에 독립군을 때려잡는 간도특설대에 속해 군인으로서의 면모를 다졌다. 해방 후 국군으로 가닥을 잡고 남로당을 색출하는 작업에 투입되면서 당시 남로당 활동을 벌였던 박정희를 살려주고 그를 군에 들여 보내준다. 박정희 입장에서 백 장군은 은인인 셈이다. 

박정희 정권의 비호 아래서 백선엽 장군과 그의 동생 백인엽 예비역 중장은 자신들의 중간이름을 따 선인학원을 만들었다. 선인학원은 그 세를 무서운 기세로 불려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교 14개를 거느린 인천 최대 사학이 된다.

백 형제의 교육사업은 온갖 비리와 부정의 천국이었다. 9900명의 부정 편입학이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61억을 횡령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선인학원 건물을 세우기 위해 땅 원주민을 내쫓고 공사를 시키기 위해 직접 학생들을 동원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전두환 정권에 이르러 '선인학원 국가 헌납서'를 제출하면서 이들의 꼬리가 잡히는 듯 했으나 이들은 여전히 재단 뒤에서 힘을 과시했다. 마침내 94년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선인 학원 소속인 인천대학교가 시공립화 되면서 이들 형제의 손아귀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94년 선인학원이 이들에게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기 직전에 건축된 게 덕흥빌딩이라는 것이다. 덕흥빌딩은 백 형제가 선인학원을 통해 부를 축적한 기념비적인 건물인 셈이다. 이같은 사실이 속속  알려지면서 당분간 부정축재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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