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조위, 朴 정부와 양 전 대법원장 정치적 뒷거래 문건 공개 파장
키코 공대위 “직권남용한 대법관 등 관련자 구속수사 및 재심 촉구”

키코 피해 공동대책위원회가 31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키코 사건을 정치적으로 거래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재판에 참여한 대법관들에 대해 구속수사를 촉구했다.

[월요신문=임민희 기자] 박근혜 정부시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해 청와대와 사전교감을 하고 ‘키코(KIKO) 사건’ 판결에 정치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재심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키코 피해기업들은 은행들이 파생금융상품을 환헤지상품으로 속여 판매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2013년 9월 키코 통화옵션계약이 불공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키코 피해기업들은 청와대와 뒷거래를 위해 키코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양 전 대법원장과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들을 구속·처벌하고 대법원이 키코 사기사건 재심에 즉각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이하 키코 공대위)는 31일 대법원 동문 앞에서 키코사건 정치적 판결 사법부 규탄대회를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수사하고 키코판결 적폐판사들을 탄핵하라”고 강력 촉구했다.

키코 공대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키코 피해기업 100만 임직원과 가족들은 참담함을 넘어 분노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이 자리에 섰다”며 “키코사태는 대표적인 금융적폐로,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할 사법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키코 사건을 이용했다는 것은 국민적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고등법원에서 많게는 70%까지 승소한 사건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2013년 9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키코의 헤지 부적합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이는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합작품이자 대형로펌, 은행, 관료, 사법부 등 많은 이익집단들이 함께 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은 지난 25일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시절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동의를 얻기 위해 ‘키코 사건’ 등을 맞바꾸려한 문건을 공개했다.

특조단이 공개한 문건은 2014년 12월 작성된 ‘상고법원의 성공적인 입법추진을 위한 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으로, 사법부가 대통령과 청와대의 국정 뒷받침을 위해 키코사건과 통상임금 소급적용 제한 판결, KTX 승무원 해고 판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 등에 적극 협력한 정황이 담겨있다. 사실상 대법원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하급심 판결에 불법적으로 관여했음이 입증된 셈이다.

키코 공대위는 최근 대법관 후보로 이종석 판사가 천거된데 대해서도 분노했다. 이 판사는 키코 사건의 판결을 담당했으며 오는 8월 3일 대법관 취임을 앞두고 있다. 공대위는 “이종석 판사는 키코 사건에 은행편을 든 장본인으로 대법관의 자격이 없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날 모인 피해기업들은 키코사태로 지난 10년간 겪었던 고충도 털어놨다.

울산 향토기업인 일성하이스코는 1984년 설립된 이래 30년간 석유가스발전 설비 등 플랜트 기자재를 생산, 수출해온 회사로 연간 2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중견기업이었다. 창업 26년만에 1억5000만불 수출을 달성했고 철탑산업훈장과 각종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키코사태로 9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해 자금유동성 부족으로 부도가 났고 2012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로 인해 430여명의 임직원과 1000개의 협력업체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일성하이스코 관리실장은 “대한민국 성장동력인 플랜트사업 발전을 위해 헌신한 장세일 회장은 키코로 인해 한순간에 환투기꾼으로 매도됐고 특정경제사범으로 전과자가 돼 모진 고초를 겪었다”며 “수출 중소·중견기업의 명예회복과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위해 키코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고 과거 잘못된 재판결과가 나오도록 사주한 주범들을 발본색원해 처벌해 달라”고 말했다.

반도체IC 등 전자집적회로 제조업체인 엠텍비전은 세계 최초로 휴대폰에 카메라를 부착해 주목을 받았다. 매출 2000억원을 바라보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해 가던 중 키코 사태가 터지면서 10여년간 자금악화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성민 엠텍비전 사장은 “산업일선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법원 앞에 모여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피해기업들이 현장에서 다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게 끔 법원이 이제는 신뢰있는 행동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 신한은행 등 14개 은행은 지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수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키코를 환헤지상품으로 홍보해 판매했고 ‘제로코스트’로 속여 계약을 유도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환율이 폭등해 1000개의 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100여개의 기업이 부도·파산했으며 현재까지도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의 키코 사기판매로 인한 피해규모는 최소 10조원 수준이며 도산과 상장폐지 등으로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기업과 2차 피해까지 포함하면 2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조붕구 키코 공대위원장은 “우리는 수십년간 세계 초일류 상품을 만들어 미국·독일·프랑스 등에 수출하면서 기업을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해 온 자랑스런 중소·중견기업이었다”며 “하지만 한순간에 환투기꾼으로 몰아 채권자와 투자자, 거래처들로부터 수많은 소송을 당하고 심지어는 법정관리 중임에도 국세청에서 특별세무조사도 받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조 위원장은 “양승태와 같은 적폐 판사들 때문에 우리는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며 “이제라도 대법원 적폐판사들을 즉각 탄핵시키고 구속수사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키코 공대위는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못한 정부와 사법부에 항의하는 의미를 담아 상장을 찢고 천만불/백만불수출탑을 망치로 부수는 퍼포먼스를 가졌다. 기자회견 후에는 키코 피해기업 대표 3인이 대법원을 방문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수사와 키코사건 재심을 요청했다.

한편 금융당국도 키코사건 재조사에 착수했다. 키코 공대위와 금융감독원은 31일 오후 2시 키코사건 민간합동조사단 구성을 위한 1차 협의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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