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포역(화물열차)./사진 = 코레일

[월요신문=지현호 기자] 1919년 3월 1일, 당시 전국에서는 동시다발적인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3·1독립선언서(기미독립선언서)' 낭독이 이어졌고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퍼졌다. 4월까지 두 달간 약 110만명이 참가한 독립운동에는 '민중의 발' 철도가 있었다.

코레일(사장직무대리 정인수)에 따르면 당시 남대문역, 수원역, 노량진역, 영등포역 등 서울과 경기지역에서는 약 47만명이 모여 만세운동을 했다. 충청도는 대전역을 중심으로 약 8만명이, 평양역과 신의주역 등지에서는 약 21만명이 운집했다.

김두얼 명지대 교수는 1919년 당시 전국 220개 군 가운데 철도가 지나는 60개 지역은 다른 곳보다 평균 7일정도 만세운동이 빨랐고, 모인 군중 수도 많았다. 이는 철도가 가장 최신의 교통수단으로 사람과 소식을 빠르게 전하는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주요역별 3·1운동을 보면 남대문역(현 서울역) 광장에서는 3월 5일 만세운동이 열렸다. 당시 학생단 대표였던 김원벽과 강기덕은 '조선독립'이라고 쓴 기를 휘두르며 제2차 독립시위운동을 선언했다고 전해진다. 3월 4일 고종의 하관식이 끝나고 열차편으로 남대문역에 도착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보고 이날을 기일로 잡은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철길을 따라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지는 효과도 있었다. 이 시위는 서울 중심가의 마지막 대규모 만세운동이 됐다.

현재 서울역 역전우체국 앞에는 당시 만세운동을 기념한 '남대문역전 학생단 3·1운동 만세시위지' 표지석이 있다.

강원도에서는 철원역이 만세운동 진원지가 됐다. 3월 2일 최병훈이 현재 북강원도 평강지역 천도교 대교구로에서 독립선언서 200여장을 가져와 소식을 전했고 11일 철원역 광장에서 만세운동이 열렸다.

충청도에서는 3월 27일 수천명이 집결해 대전역 앞을 거쳐 서대전을 왕복 행진하며 시위를 했다. 4월 1일에는 아우내장터에 3000여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운동을 했고 다음 날 병천 장날에는 1만여명이 모였다.

전라남도에는 나주역이 독립운동 진원지로 꼽힌다. 3대 항일독립운동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향하는 통학열차에서 내린 일본인 남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하면서 발단이 된 사건이다. 5개월간 전국 학생 5만40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학생독립운동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1462명이 구속되고 2912명이 퇴학 또는 무기정학을 당했다.

이처럼 철도는 전국 주요 지역을 가장 빠르게 연결하는 최고의 교통수단인 동시에 독립 운동가의 '발'이 됐다.
실제로 1911년 준공된 '압록강 철교'는 한반도 신의주역과 중국 단둥역을 잇는 국제철교로 새로운 항일루트가 되기도 했다. 만주에서 활동하는 독립 운동가들은 압록강 철교를 통해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1922년 종로경찰서 폭탄의거를 실행한 김상옥 열사는 이 철교를 지나는 열차를 이용해 권총, 탄약, 폭탄을 담은 상자 1개를 남대문역으로 운반할 수 있었다.

영화 '밀정'의 배경이 된 '황옥 경부 폭탄 사건' 역시 경의선 철도편을 이용한 독립투쟁이었다. 1923년 2월 11일 아침 김시현은 폭탄을 담은 고리짝을 경의선 철도편으로 신의주역에서 경성부 효자동 21번지 조한석(조황) 앞으로 배달했다. 일본 순사 경부직까지 올라간 황옥의 도움으로 무기 반입에 성공했지만 일본의 집요한 수사와 의열단원의 배신으로 거사는 실패로 돌아간 사건이다.

의친왕 망명을 추진한 대동단 사건은 수색역에서 벌어졌다. 대동단은 3·1운동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장으로 의친왕 이강을 추대하기 위해 망명작전을 계획했다. 1919년 11월 9일 수색역을 출발해 열차편으로 압록강을 통과, 11월 12일 중국 안동역에 도착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평안북도경찰부에 발각돼 계획은 실패했다.

이러한 역사의 발자취는 지금도 전국 철도역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서울역, 영동역, 이원역, 황간역, 익산역 광장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한 분들의 공훈과 정신을 기리는 건축물, 조형물 등이 있다.

서울역 앞에는 강우규 의사가 사이토 마코토 일행에게 폭탄을 던진 의거 터가 있다. 충북 영동역에는 민족독립사상 교육을 펼쳤던 송병준 의사를 기리는 동상 기념비가 있다. 옥천군 이원역에는 이원 장날 만세운동을 주동한 애국지사들 기림비가 있다. 허상기, 허상구, 허상회, 육창주, 공재익, 조이남, 이금봉, 이호녕 등 9명의 이름이 전면에 새겨져 있다.

충북 영동군 황간역에는 1904년 러일전쟁 후 자강 방책을 강경히 상소하다 체포돼 옥중에서 순국한 이건석 선생을 기리는 기념비가, 전북 익산역에는 1919년 4월 4일 익산 만세운동 참가자를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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