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친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상생을 꿈꿔요”

산마을 고등학교 입구. <사진=월요신문>

[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오월의 첫날, 인천 강화도에 위치한 산마을고등학교를 찾았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가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둥지를 튼 산마을고가 있다.

산마을고는 일반적인 대안학교 모델인 ‘기숙형 대안학교’다. 매해 인천시 학생 10명, 타 지역 학생 10명 총 20명을 모집한다. 전교생은 1,2,3학년 통틀어 60명이 전부다. 학생들은 3년간 학교에서 먹고 자며 생활한다. 물론, 방학기간과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간다. 지난 2000년 개교한 국제 복음학교에서 시작된 산마을고는 2006년 강화도 양사면에서 현 양도면으로 이사하고 이름도 바꿨다. 흙과 나무와 돌을 건축 재료로 삼고, 작고 아담한 마을을 연상시키는 건물을 지었다. ‘학교는 진정한 자아발견과 수행을 돕는 구도(求道)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철학을 반영했다.

오후 2시 산마을고 입구에 도착했다. 백일홍이 자태를 뽐내며 이방인을 반겼다. 기와를 얹은 교실에서는 실로폰 소리가 딩동 울리고 멀리 운동장에서는 공차는 소리가 들렸다. 교정에 들어서자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교무실 위치를 묻자 한 여학생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라며 흔쾌히 바지를 털고 일어섰다. 수업 시간이 아니냐고 물으니, 아직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다며 배시시 웃는다.

나무와 황토, 돌로 지어진 산마을고 건물. <사진=월요신문>

황토 벽돌로 지은 교무실 안으로 들어서니 누군가 반갑게 맞는다. 산마을고 안성균 교장선생님이다. 목소리에 따스함이 묻어났다. 교정이 참 예쁘다고 말을 건네자 안 교장은 “산마을고의 교육철학은 자연, 평화, 상생이다. 학교 건물을 지을 때도 이 가치를 어떻게 담을까 고민하며 지었다”고 말했다. 산마을고 학교법인 전 이사장의 부인이 건축을 전공해 설계를 맡았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산마을고에는 일반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곳이 있다. 재래식 ‘뒷간’과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퇴비로 활용하는 퇴비장 등이다. 학생들을 자연과 좀더 가깝게 지내게 하려는 학교의 배려가 담긴 것이다. 교정 한 켠의 태양광 발전 판넬도 눈에 띄었다. 안 교장은 “냉난방은 지열과 태양광을 이용하고, 남은 전기는 한국전력에 다시 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안성균 산마을고 교장. <사진=월요신문>

‘자연친화’는 건축물뿐 아니라 학생들의 식생활 습관에도 적용된다. 산마을고는 탄산음료, 통조림 등 ‘식품 첨가제’가 들어간 음식은 가급적 피한다. 안 교장은 “급식에는 친환경·유기농, 제철음식, 지역음식, 채식위주 식단이라는 4가지 원칙이 있다. 저학년 학생들은 적응에 시간이 걸리지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채식을 시도하는 학생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먹거리 역시 하나의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내 입으로 들어오는지 알면 인간이 생태계의 한 고리임을 알 수 있다. 쌀은 학생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 100% 자급자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마을고의 커리큘럼은 어떨까. 최보길 교무부장은 “오전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보통 교과를 가르치고 오후에는 산마을고가 개설한 특성화 교과를 배운다”고 말했다. 특별교과는 크게 인성, 예술, 공동체성, 전환교육 네 분야로 나뉜다. 인성 부문은 생태농업, 삶과 철학 등이다. 최 교무부장은 “생태농업은 학생들에게 두 평 남짓한 텃밭을 제공하고 농사일을 체험하는 수업이다. 농업고등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농업기술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생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삶과 철학은 세미나 형식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강화도 지역사회와 연계해 역사를 배우고 봉사하는 ‘지역과 세계’, 목공, 영상제작, 미술, 기타 배우기 등 8개 예술관련 프로그램을 선택해 배우는 ‘창작활동’, 직조, 철공예, 제빵 등 의·식·주·에너지 분야의 다양한 생활기술을 익히는 ‘생활기술’, 해외 청소년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 등이 있다.

생태농업 수업 중인 산마을고 학생들. <사진=월요신문>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오후 7시부터 8시 40분까지 ‘야학’이 시작된다. 미술, 밴드, 글쓰기, 요가 등이다. 야학은 매주 월, 화, 목요일에 한다. 수능 국어, 영어, 수학 등 지식교과를 위한 수업도 있다. 최 교무부장은 “야학을 강제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즐겁게 야학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이후 시간은 자유로운 시간이다. 오후 10시부터 소등 전인 11시까지는 하루를 되돌아보는 ‘묵학’시간을 갖는다. 다음날 기상시간은 7시. 대안학교라고 해서 늘어지게 풀어주지는 않는다.

수업료는 어떨까. 최 교무부장은 “학년별로 다르지만 연간 600여만원 정도의 학비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다소 비싸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먹고 자고 하기 때문”이라며 “대안학교라고 해서 특별히 교육비가 비싼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업료 등 비용은 수도권 공립 학교보다 저렴한 수준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있는 2학년 학비는 조금 더 든다. 학부모들께선 ‘학원 등 사교육비 지출을 생각하면 저렴한 편’이라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대안학교 운영에 어려움은 없을까. 이에 대해 최 교무부장은 “대안교육이 제도권 안에 편입되면서 교육비 등을 지원받아 학부모 부담금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아직까지 관련 관청에서 대안교육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세미나를 가보면 교육에 몸담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대안학교 학생을 ‘부적응 아이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입시뿐 아니라 다양한 것들을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한다. 산마을고 같은 인가형 대안학교가 미력하지만 좋은 컨텐츠를 만들고, 교육계의 대안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이뤄지면 좋은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자연 속에서 상생하는 아이들

산마을고는 학생들의 의사를 존중한다. 대표적인 예가 기숙사 소등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산마을고 기숙사 소등시간은 오후 11시인데, 이 시간을 정하는데 꼬박 다섯 달이 걸렸다. 조금 더 늦게 자고 싶은 학생들과, 조금 더 일찍 재우고 싶은 선생님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합의하는데 5개월이 걸린 것.

최보길 교무부장은 “매주 학생총회가 있고, 한달에 한번은 교사와 함께 하는 식구총회가 있다. 학생들은 과제 시간이나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소등시간을 늦추길 바랐지만, 선생님들은 늦게 자면 건강에 영향이 가니까 소등을 일찍 하자고 했다. 결론은 11시 소등하는 것으로 났다”고 말했다. 불 하나 끄는 것 갖고 그렇게 오래 걸렸냐고 묻자 그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생활에 관해선 학생과 교사가 의논해서 결정한다. 그것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보다 민주적인 절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하늘(19) 산마을고 학생회장. <사진=월요신문>

학교 당국의 이런 방침은 학생에게서도 확인됐다. 최하늘(19·남) 학생회장은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누구나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다. 전교생이 60명이라 선후배간 위계가 일반고에 비해 없고,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정에서 만난 이혜담(18·여), 이찬영(18·남), 송주하(18·남) 학생은 최하늘 학생을 ‘형’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굴었다.

혜담 양은 “아는 언니가 산마을 재학생이어서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좋은 학교인 것 같아 관심을 가졌고, 부모님 교육관과 학교 이념이 같아 산마을고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혜담 양은 “일반고에 비해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다. 야학으로 연극이나 밴드, 서가, 요가같은 다양한 분야를 체험할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은 동아리가 다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에 동아리만 20개가 넘는다. 다들 동아리 3~4개는 기본으로 한다. 바쁘지만 즐겁고 재밌다”고 덧붙였다.

찬영 군은 “중학교를 의미없이 보냈다. 공부를 썩 잘하는 편도 아니고, 일반고로 진학하면 제 개성도 묻히는 것 같아 부모님과 의논 끝에 이 학교에 왔다”고 말했다. 찬영 군은 ‘생태동아리’ 회장이다. 그는 “오늘은 동아리 활동으로 학교 안에 있는 나무랑 풀이름을 전부 찾고 생태 지도를 만들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학교 매점을 운영하는 ‘협동조합’ 소속 조합원이기도 하다.

매점 운영을 맡은 성 결(18·여)양은 “유기농 과자와 음료수를 팔고 있다. 학교 친구들이 운영하는 영농단에서 만든 매실액도 인기메뉴다. 협동조합은 학생들이 1구좌당 5천원을 출자해 만들었는데, 사실 수익은 거의 안 난다. 저번 달에는 과자를 수백개나 팔았는데 수익이 6만8천원이 나왔다”며 웃었다.

학생회장인 최하늘 군에게 고민이 있다. 마을에 단 하나뿐인 치킨집으로 몰래 치킨을 먹으러 가는 학생들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 최군은 “외부 음식을 학교에서 못 먹게 되어있는데 새학기라 잘 안지켜지고 있다. 주말에 집이 멀어서 귀가하지 않고 기숙사에 잔류하는 학생들이 라면을 끓여먹거나, 시험기간에 치킨을 먹으러 탈출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래도 규정을 어긴 학생들이 반성하고 스스로 고치려고 한단다. 최근에는 외부음식을 먹은 학생들이 ‘외부음식 세탁기’를 만들어서 반성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기숙사에서 서로 싸우는 일은 없을까. 최군은“학생들이 종일 붙어있다 보니 말다툼하거나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치고박고 싸우는 경우는 없다. 싸워도 금방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고 말했다.

산마을고 학생들도 입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군은 “1~2학년 학생들은 대학 생각을 하지 않고 즐겁게 배우지만, 3학년생들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군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수능을 준비하고 있지만 대학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협동조합 일을 하면서 사업에 관심이 생겼다.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는 청년창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